결혼을 위한 만남을 다시 위대하게!
- Sang Lee
- 5 days ago
- 3 min read
결혼을 위한 만남을 다시 위대하게!
(2025/11/12)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dSFkeC7P1JM
(2) 번역 스크립트 :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을 광기라고 정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결혼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결혼하는 사람들도 훨씬 더 늦은 나이에 결혼한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전체가 전례 없는 출산 절벽(birth dearth)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하나님의 창조된 선물이며 문명의 기둥이라고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은 청년들의 마음속에서 결혼과 가정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그 “광기”의 또 다른 예이다.
아마 우리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이 보도한 중국의 한 노년층 집단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매주 주말마다 ‘결혼 시장’으로 불리는 공원에 모여, 자녀들의 사진과 학력·성취 사항을 내걸고 중매를 시도한다. 목적은 자녀에게 배우자를 찾아주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부모만큼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한 33세의 미혼자는 “부모님이 저보다 더 초조해 하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의 걱정은 타당하다. 보도에 따르면 인구 10억 명이 넘는 중국에서 2024년에 결혼 신고를 한 커플은 600만 쌍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대비 21%나 감소한 수치이며, 수십 년간 시행된 한 자녀 정책의 또 다른 여파이다.
미국이 중매 결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결혼하라”는 이유는 낭만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청년들도 관계의 영역에서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결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성경은 결혼을 성인의 삶과 사회의 초석으로 묘사하지만, 많은 청년들은 결혼을 일종의 “성취의 징표(capstone)”—즉, 인생의 다른 모든 목표를 달성한 후에나 고려할 사적인 일—로 여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라고 부르시며 결혼을 영원한 진리의 비유로 사용하셨지만, 할리우드와 라이프스타일 잡지들은 결혼을 진정한 자아실현의 장애물로 묘사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정을 위해 창조하셨지만,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구속받지 않은 성적 자유”가 진정한 충족의 길이라고 세뇌당해 왔다.
또 하나의 문제는, 결혼을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이 부모나 목회자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앱에 의존한다. 2023년 퓨 리서치(Pew Research)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30%가 데이팅 앱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 그중 18~29세는 53%, 그리고 대학생의 절반(50%)이 앱을 통해 데이트 상대를 찾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이미 가장 많은 또래와 직접 마주하는 장소인 대학 캠퍼스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이런 앱들이 로맨스를 망치고 있다.
물론 희망의 징후도 있다. 교회로 돌아오는 청년들의 증가 현상은 결혼이 회복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남녀가 같은 교회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X(트위터)의 한 사용자는 이렇게 썼다.
“기독교 데이팅의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여자들은 다 침례교나 초교파적인 대형교회에 있고, 남자들은 가능한 한 전통적인 교회에 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모든 장애물 속에서,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결혼을 위한 만남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
2012년 윌버포스 위켄드에서, 매기 갤러거(Maggie Gallagher)는 우리 모두에게 중매의 사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고 도전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젊은 기독교 남녀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결혼을 구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규범에서 과감히 벗어나고, 그런 일에 따르는 어색함을 감수하며, 자기중심적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어쩌면 조금은 “이상해져야” 가능하다.
많은 청년들은 “결혼이 선하다”는 말을 이해할 세계관적 틀(worldview categories)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방향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주입받은 그들에게, “희생적 사랑”이나 “결혼의 중심 목적은 자녀를 낳는 것이다”와 같은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우리는 그런 개념들을 다시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남성들은 여성을 향한 로맨스가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배워야 하고, 여성들은 남성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다고 해서 여성 전체를 배신하는 것이 아님을 배워야 한다.
젊은 남성들은 여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을 각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특히 연장자인 남성들에게서 들어야 한다. 젊은 여성들은 성혁명이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는 사실을 직시하도록 도전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중이 아니라 지금, 그 남자에게 ‘예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격려받아야 한다.
요컨대, 결혼과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로부터 그들이 들어야 한다. 교회는 부모와 함께 협력하여, 청년 세대가 결혼과 가정을 다시 “그럴듯한(plausible)” 것으로 느끼게 만들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물론 우리는 “전통적(trad)” 남성들과 “초교파(non-denom)” 여성들이 같은 장소에 모일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만약 그것을 이뤄낸다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는데 훨씬 더 열려 있는 청년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브레이크포인트 칼럼은 헤일리 윌슨(Hayley Wilson)과 공동으로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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