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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Sang Lee

기독교는 단순히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진리이다

기독교는 단순히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진리이다

: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2024/05/24)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YjFsIiHeoD0

(2) 번역 스크립트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중심에 계신 주님과 그리스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을 보면 놀랍다.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처럼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정확히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가치를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심지어 피터슨은 창세기를 통해 심리적 통찰력을 얻는 강의 시리즈도 시작했는데 이미 여러 편에 달한다.


상당수의 무신론자도 문명에 기독교가 공헌한 점은 인정하게 되었다. 역사학자 톰 홀랜드와 같은 오랜 무신론자들은 평등, 인권, 이웃 사랑, 심지어 과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는 기독교의 영향력의 산물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 왔다.


홀랜드는 최근 기적적으로 암을 치유한 경험 덕분에 신념의 경계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도미니언>에서 기독교가 좋은 문명을 낳았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


또는 최근 자신을 '문화적 기독교인'이라 칭하며 성경을 믿지 않지만 찬송가와 성당을 좋아하고 이슬람 사회보다 기독교 사회에서 살겠다고 고백한 노골적인 '신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도 있다.


이 모든 인물은 기독교 세계관의 일부 측면과 개인과 문화에 미친 기독교의 혜택을 인정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신념을 긍정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들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사도 도마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오는 모든 지상적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또 다른 이유로 종교적 신앙을 추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악화일로에 있는 정신 건강의 위기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행복을 찾도록 도울 수 있는 잠재력 때문이다. 지난주 아서 브룩스(가톨릭 신자)는 스위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가르침에 따라 "좋은 삶의 다섯 가지 기둥"을 선전하는 글을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기고했다.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무신론자 신비주의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종교적 이미지가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융은 신체적 건강, 예술과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과 함께 좋은 삶의 다섯 번째 기둥으로 "회복력을 키우는 철학 혹은 종교적 관점을 갖는 것"을 꼽았다. 브룩스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큰 그림을 설명하고 고통과 존재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초월의 길을 찾아라." 브룩스는 이 글에서 종교적 신념이 "삶의 의미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강력하며, 영성은 더 나은 정신 건강과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 우리 모두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높은 힘' 또는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며, 좋은 사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면 누가 신경이나 쓸까?


그리고 교회에 출석함으로써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개인적 또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 그렇게 할까? 도킨스와 홀랜드가 좋아하는 성당과 찬송가, 인권처럼 이러한 혜택은 실제로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데서 오는 부산물이 아닐까? 사람들이 이슬람 사원에 다니면서 얻는 심리적 행복과 상관없이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인지가 중요하지 않는가?


이것은 현대인들이 심리적,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종교로 돌아서면서 우리가 지적해야 할 중요한 차이점이다. 지상의 행복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께 충성하는데서 오는 부산물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오셔서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오셨다.


C. S. 루이스는 『피고석의 하나님』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종교에 귀의한 것이 아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포트 와인 한 병이면 충분하다. 정말 편안함을 느끼게 해줄 종교를 원한다면 기독교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과 사회로서 초월적인 정신적 지주를 갖는 것의 이점을 재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세속주의에는 정신에 필수적인 '영양소'가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이며, 사람들이 그 영양소가 존재하는 곳으로 신앙을 찾는 것은 옳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행복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와 그 다음 단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문화적 순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한 더 많은 자료를 보려면 breakpoint.org를 방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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