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푸엔테스의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 Sang Lee
- Apr 26
- 3 min read
닉 푸엔테스의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
2025/12/11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viDNSreTIsY
(2) 번역 스크립트 :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진적 페미니즘 사상은 여러 세대의 젊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성공적으로 심어 왔다. 즉, 여성은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기들이 여성의 경력보다 결코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남성성은 유해하며, 성관계는 “자유”고, “여성은 남성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특히 하이힐을 신고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내나 어머니가 되기를 목표로 하는 젊은 여성들은 줄어들었고, 그걸 원하는 여성들조차 그런 생각을 내색하기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다. 대신 여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식 능력을 선물이라기보다 문제로 여기도록 배워 왔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여성은 이제 CEO와 이사회 직책의 기록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 가운데 남학생보다 여학생 중에서 “여성이 노동시장에 충분히 진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또한 퓨의 조사에 따르면 낙태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4년에는 18~29세 여성의 76%가 낙태에 찬성했다. 그리고 더 많은 젊은 남성과 아버지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반면, 더 많은 젊은 여성과 싱글맘들은 교회에 머물지 않고 있다.
오늘날 페미니즘 이념에 동조하는 젊은 여성들은 다수파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신앙이나 가정보다 자신을 우위에 두도록 배워 왔다. 어떤 악습(vice)들은 미덕(virtue)이라고, 자신은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자라고, 남성은 적이라고 배워 왔다.
그리고 지금, 성혁명이 여성에게 했던 것처럼, 남성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려는 또 다른 외부 운동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운동은 코로나 봉쇄 조치, #MeToo 운동, DEI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의 과도함에 대한 반작용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페미니즘과 유사한 운동이지만, 남성을 위한 것이다.
특히 보수 성향의 Z세대 남성들 가운데 성장하고 있는 한 집단은 극단적 인플루언서들을 따라가고 있다. 이들은 악습을 미덕이라 가르치고, 남성은 피해자이며, 여성은 적이라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앤드루 테이트는 과장되고 자기 중심적인 초(超)남성성을 외친다. 그리고 최근에는, 특히 찰리 커크 암살 이후로, 닉 푸엔테스가 방향을 잃은 청년층 가운데 ‘무언가를 믿고 싶어 하는’ 이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끌어 모으고 있다. 푸엔테스는 국가적·정치적·인종적 보존에 집중하면서 다른 모든 것은 불태우라고 촉구한다. 그의 메시지는 니체적 ‘권력 의지’의 한 형태로, 유대인 혐오, 여성에 대한 조롱과 위협, 백인 미국 남성에 대한 충성을 포함한다.
혐오 발언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기 전까지, 푸엔테스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렌딩 팟캐스트 1위를 차지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로이퍼(Groypers)”라고 불리는데, 유튜브와 애플에서 퇴출된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커크 암살 직후 진행된 그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25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최근 팟캐스터 리암 드보어는 푸엔테스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려 했다.
“닉 푸엔테스는 지난 10년 동안 한 세대의 젊은 남성들에게 ‘너희 존재 자체가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해 온 시대의 최종 산물이다. … 한때 남성들에게 제시되었던 ‘열심히 일하면 존중받는다’는 약속은 파기되었다. 그 자리에 조롱이 들어섰다. … 온건한 이들의 온전한 문제 제기조차 ‘증오 발언’으로 낙인찍히자,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수년 동안 온건파는 토론이 분열을 메워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커크]가 총격으로 살해되었을 때, 어두운 현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피를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 그때 많은 젊은 남성들은 ‘발언 때문에 살해당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말을 할 것이 없다’고 깨달았다. 푸엔테스는 그 공백 속에서 부상했다. 천재여서가 아니라, 수치와 배제가 분노로 굳어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부상한 것이다.”
타락한 인간, 특히 젊은 남성들은 자신의 죄를 변명해 주고 자신을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설명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푸엔테스의 매력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 큰 이유는 의미와 도덕적 구조가 없는 삶을 믿는 젊은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체성을 전혀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다.
부모와 목회자들은 젊은 남성들에게 “너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남성으로서 너의 비전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남성성의 비전은 크고 외향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 가정을 돌보고, 노동하고 공급하며, 약자를 지키고,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맡겨진 것을 더 나은 상태로 남기는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조롱하고 아무것도 세우지도 지키지도 않는 영원한 청소년기적 남성상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후자는 종종 타당할 수 있는 분노와 좌절 위에 서 있지만, 삶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여성에게 피해를 준 그 짝과 동일하게, 이 운동도 남성들에게 큰 해를 끼칠 것이다.
이 브레이크포인트 논평은 헤일리 윌슨과 공동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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