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의 쇠퇴 (2024/10/22)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Z5MeZuzHgQc
(2) 번역 스크립트:
때로는 세상에 혁명을 일으킬 것 같았던 발명품이 지나가는 유행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최근의 예가 바로 데이트 앱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의 한 기사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데 도움이 되는 이러한 디지털 보조 도구에 대해 “사람들이 왜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설명했다.
분명히 데이트 앱은 2021년에 정점을 찍었다. 현재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활성 사용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만 채팅을 시작할 수 있는 앱인 범블(Bumble)과 같은 일부 앱은 온라인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어 '여성 우선' 모델을 버릴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삭제되도록 설계된 데이트 앱"을 표방하는 힌지(Hinge)와 같은 앱은 원하는 매칭 서비스를 유료화해서 사용자를 소외시켰다. 한때 다른 앱들을 압도했던 데이트 및 소개팅 앱인 틴더(Tinder)의 다운로드 수는 2014년 이후 3분의 1로 감소했다.
이러한 앱의 저조한 실적을 고려하면 다운로드가 감소한 사실은 놀랍지 않다. 헌신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 10%만이 앱이나 사이트에서 파트너를 만났다. 퓨 리서치에 따르면 앱 사용 여성의 절반이 자신의 경험을 “다소 또는 매우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인간 행동의 컴퓨터>라는 저널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온라인 데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배우자를 만난 사람들보다 만족스럽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가족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배우자를 만나는 다른 방법(교회, 파티, 친구 그룹, 대학, 직장)에 비해 온라인 데이트가 평균 결혼 만족도가 가장 낮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온라인 데이트가 절망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크리스천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여 사랑스럽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이하모니(eHarmony)와 같은 초기 버전은 기독교인이 만들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호감, 비호감”을 선택하게 하는 최신 앱보다 사람들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끄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좌절스러울 정도로 애매하고 약하다. 아마 데이팅 앱의 비실체적인 특성과 의도적이든 아니든 상대방이 누구인지 숨길 수 있는 프로필로 상대방의 직접적인 경험을 대체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소셜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데이팅 앱은 사용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선별하여 가장 돋보이는 특징과 사진만 제시하고 결점과 특이한 점은 숨기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꾸미기는 거짓말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데이팅 앱은 본질적으로 소비주의적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진열대에 진열된 상품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 한 통로 건너편에는 항상 경쟁 상품과 더 나은 거래가 있다. 게다가 대안이 끝없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로맨스를 없앨 수 있다. 낸시 조 세일즈가 가디언지에 쓴 글이다.
"...데이팅 앱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한히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만난다. 그들은 특정 상대를 정하기 전에 수백, 수천 명의 사진을 보지만, 다른 사람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결코 멈추지 않는다."
또한 데이팅 앱의 시대가 현실에서의 만남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8세에서 25세 사이의 남성 중 거의 절반이 여성에게 직접 데이트 신청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액튼 인스티튜트'의 앤서니 브래들리 연구원에 따르면 많은 남성이 “소름 끼치거나” “포식자”로 분류될까 봐 현실 세계에서 여성에게 접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앱이 실제로 데이트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안을 찾을 것이다. 현재 시장에는 아직 대체할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시장이 사랑을 만들어내는 최적의 장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해결책은 과거에 연애와 결혼을 촉발시켰던 직접 대면하고, 이미지 보정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상호 관계를 되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교회와 다른 기독교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결혼을 하나님이 만드신 선하고 생명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일반 문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책임감을 지니는 구조를 장착하고 있다.
필자는 '서밋 미니스트리'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좌우를 잘 보세요... 여러분의 미래 배우자가 이 교실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대부분은 웃지만 필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 교실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면책 조항: 서밋 미니스트리는 이것이 환불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과거의 실적이 반드시 미래에도 성공하리라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독교인들이 젊은 커플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든, 우리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 인정할 수 있다. 데이팅 앱의 쇠퇴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상품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척하는 데 지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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