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의 나라
1. 영어 오디오와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와 한국어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J1T0JrP0Q5w
(2) 한국어 번역 스크립트:
나는 딸이 셋이나 있지만 그래도 바비 인형을 소재로 한 영화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 논할 일이 있을 거라 예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바비 영화는 개봉한 주말에 무려 1억 5천 5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a), 이 영화의 줄거리의 더 깊은 의미와 여성의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문화적 함의에 대한 숱한 해설 기사로 헤드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스(b)에 실린 기사에서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성경에서 에덴 동산에 관한 설명과 비교하였는데, 선악에 관한 지식이 세상을 부패시키기 전에 천국에서 살았던 태고의 커플과 비교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그런 특정한 시각을 의도했든 아니든, 그녀의 "바비"는 페미니즘에 대한 현대적인 논의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떻게 그 세상을 바로잡을 것인가?"와 같은 세계관에 관한 가장 큰 질문들과도 관련된다. 그 과정에서 바비는 빛나는 색감과 자각적 비판 이면에 성경의 진실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조에 더 가까운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비랜드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행복은 방종적 자유를 누리며 표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여성이 운영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대사는 "바비는 모든 여성이고, 모든 여성은 바비이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으므로, 여성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포함한다. 이 관점에서 힘을 얻는 것은 구속과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메세지는 영화가 모성애를 보는 관점에서도 전달된다.
기독교적 성찰과 상식은 모두 이런 식의 주관적 행복관(c)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드러낸다. 행복이 인생의 전부이고, 행복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과 자유, 표현의 한 쪽 극단에 쏠려 있다면, 어떻게 누가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 진정한 행복은, C.S. 루이스가 가르쳤듯, 목표라기보다는 잘 살았던 인생의 부산물이다. 행복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신 분(d)께에 속해 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찾는다.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바비의 해답은, 남성이다. 그녀가 "현실 세계"에 던져졌을 때, 그녀는 세상이 깨어진 이유는 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행동과 태도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한 등장인물이 말했듯, "우리는 오직 한 가지에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여성을 싫어한다. 남성은 여성을 싫어하고, 여성은 여성을 싫어한다."
이것은 ("남성이 아닌 존재"(e)라는 표현 말고는) 여성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거나 더 정확하게는, 여성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이자 이상한 불평이다. 이 영화 속 세상에서 모든 남자는 억압적이고 잘 의식하지 못한다. 켄은 그저 "그녀의 속도를 늦추고" "문제에 빠지기"만 하는 반면, 바비는 그들 모두를 능가할 수 있다. 켄은 바비랜드에서 여성 지배 계층을 인정하는 것보다 "현실 세계"의 중년 백인 남성의 힘을 모방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멋진 신세계인 "켄덤"을 소개한다.
하지만 켄덤의 세계에서 행복과 자유에 대한 궁극적인 장애물은 남성이다. 남성들은 좋지 않다. 반면 여성들은 좋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서 제2, 3세대 페미니즘을 형성했던 프레임과 동일하다.
성경에서 죄는 불순종이자 자율성에 대한 갈망으로 설명된다. 세상이 잘못된 이유는 죄로 인해 생긴 갈등과 고통, 죽음이다. 죄가 들어와서 세상을 오염시켰고, 남녀를 서로 등지게 만들었다. 남자들이 세상을 망쳤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둘 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셨다. 둘 다 죄로 인해 선하지 않다.
영화에서 바비랜드는 가부장제를 버림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 바비는 세뇌당한 바비들에게 억압의 복음을 전하라고 "현실" 세계의 "진짜" 여성 중 한 명에게 요구한다. 생각이 없는 켄들은 서로 등을 돌린다. 바비인형들은 베티 프라이단의 "여성의 신비: 여성은 억압의 희생자이자 결코 이길 수 없다"에 나오는 바비인형 버전이 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신들의 몸에 대해서조차 피해자이다. 이 점에 있어 영화는 분명하다. 영화 초반의 장면 중에는 어린 소녀들이 아기 인형에 싫증이 나서 인형들의 머리가 깨지도록 땅에 힘껏 던진다. 임신한 바비 인형은 또한 "섬뜩하다"고 암시되며 생산이 중단된다.
결국, 바비랜드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예전처럼 여성들이 운영하는 낙원과 같은 사회로 되돌아간다. 켄들 역시 바비와 별개로 "스스로를 발견"한다. 즉,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니면 그들은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이 영화의 논의의 많은 부분은 바비가 회복된 유토피아 바비랜드가 아니라, 인간의 실제 세상에서 살기로 선택하는 마지막 장면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 특히 여성 몸의 현실에 대해, 그리 미묘하지 않게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거윅이 이 마지막 장면을 바비랜드에 대한 주관적인 묘사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녀가 의도했든 아니든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은 객관적인 현실의 세계이고, 인생의 가장 큰 질문에 대한 답은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브레이크포인트는 미카엘라 에스트루스와 함께 작성했다. 브레이크포인트의 팬이라면 가장 선호하는 팟캐스트 앱에 리뷰를 남기기 바란다. 이 문화적 순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더 많은 자료를 보려면 breakpoint.org 를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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