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와 진정한 사랑
(2025/02/17)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국문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IIkta9CiC30
(2) 국문 번역 스크립트
지난 금요일은 발렌타인데이였다. 따라서 이 글을 보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늦었다. 그러나 이 “기념일”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엔 늦지 않았다.
발렌타인데이가 카드 회사들이 만든 버전으로 바뀌기 전만 해도, 이 날은 3세기 로마의 기독교 순교자 발렌티누스를 기억하기 위해 따로 정해진 날이었다. <What Would You Say?> 비디오 시리즈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이 사람의 생애에 관한 사실 관계나 신화에 있어 역사적으로 불확실한 점이 몇 가지 있다. 그러나 그의 순교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은 로마에서 결혼을 금지했던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와 충돌했다는 것이다.
<더 히스토리 채널>의 설명과 같이 그 황제는 “로마의 남자들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에 군대에 입대하기를 꺼린다”고 믿었다. 발렌티누스는 황제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비밀리에 결혼시켰다. 그는 잡혀서 2월 14일경 사형을 선고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앞이 안 보이던 로마 판사의 딸을 기도로 치료해 준 적이 있다. 임종 직전 그는 그 소녀에게 노트를 “발렌타인으로부터”라고 서명한 노트를 남겼다.
그 이야기가 정확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발렌티누스에 대한 모든 고대 기록은 2월 14일을 그가 순교하고 희생된 날로 연관짓는다. 반면, 오늘날 문화에서 사랑, 성, 로맨스에 대해서는 대부분 너무 왜곡되고, 자기중심적이며, 위험하게 언급하기 때문에 이 성인을 기념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이라고 묘사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을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C. S. 루이스가 그의 저서 <네 가지 사랑>에서 “에로스”라고 부른 낭만적 사랑은 올바른 질서에 따라 이해할 때에만 아름답게 인간이 경험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에로스가 우리를 “개인적 행복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우리 존재의 중심에 두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을 정의하는 아가페, 즉 자기 희생적인 사랑에 의해 적절하게 조정된 남녀 간의 사랑일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로맨스는 루이스가 생각하기에 “사랑 그 자체가 경쟁자 없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게 될 때 우리가 모두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미리 맛보게 해 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에로스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얼마나 무질서한 사랑으로 변질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어 왔는지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로맨스나 성(性)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때, 에로스는 왜곡된다. 자신과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파탄으로 이끄는 일종의 돌연변이적 관능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요한이 요한복음 전체에서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언급한 바로 그 요한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에는 감각적 쾌락 이상의 것이 있고, 의미에는 이기심 이상의 것이 있으며, 사랑에는 서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축소된 버전 이상의 것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우리 자신 바깥으로, 위로 향하게 한다. 먼저 하나님을 향하고,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게 한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요한 서신은 계속해서 말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성경 전체에서 사랑에 관해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비할 데 없는 사랑의 표현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이다. 발렌티누스에게 있어서 올바른 반응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의 실재를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죽음”도 필요하다. 우리 같은 시대 문화 속에서는 궁극적인 것처럼 취급되는 자아와 욕망에 대한 죽음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것은 사랑과 로맨스, 심지어 성(性)까지도 기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이러한 선물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기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발렌타인데이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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