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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낙태 이론

Writer: Sang LeeSang Lee

비판적 낙태 이론 (2024/07/17)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A-RGgZNk9rU

(2) 번역 스크립트:

일반적으로 논쟁의 핵심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쪽이 잘못된 쪽이다. 예를 들어, 낙태 지지자들은 과학적 논쟁과 헌법상의 논쟁에서 대부분 패배하자, 이제는 비판 이론의 논점과 피해자성 주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즉 낙태를 정의의 문제로, 낙태에 반대하는 사람을 억압하는 계층으로 묘사하는 전략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나온 단편 영화는 낙태 클리닉 종사자와 환자들이 생명 보호법과 시위대의 재앙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린 삭스가 제작한 이 동영상은 '진통(Contractions)'이라는 제목으로, 대부분 병원 가운을 입은 흑인 여성들이 얼굴을 가린 채 낙태 클리닉 주차장을 돌아다니는 기괴한 장면과 함께 가족계획협회(Planned Parenthood) 직원이 숨 가쁘게 드라마틱한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장면으로 구성된다.

 

한 직원은 "일을 하러 건물에 들어가기만 해도 공격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매일이 전쟁이라구요."


또 다른 직원은"매일 수많은 자유를 빼앗기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유색 인종 여성이라고 밝힌 한 환자는"새로운 비밀 결사 조직에 들어온 기분이라구요 ."라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말 통제에 관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힘을 빼앗아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다음 질문은 태아를 살해하는 것을 조장하는 장소에서 나온 냉혹하고 아이러니한 질문이다. "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계속 증명해야 하나요?"



<뉴욕타임즈>의 그 동영상에서 소위 (낙태) "절차"는 대부분 가려져 있다. '낙태'라는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프로라이프 지지자들이 여성(특히 소수자)을 통제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데 열중하는 강력한 억압하는 계층, 즉 흑인 차별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암시하는 이미지와 문구가 전면과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낙태의 현실을 모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예로, 영화 ' 더 뷰 '에서 배우 앤 해서웨이는 "낙태는 자비의 다른 말이 될 수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설명했다. 그녀는 경력을 시작하는 젊은 여성에게 임신은 인생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생식의 운명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수정(conceptions)"을 법적으로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유와 유연성"을 빼앗는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것은 낙태에 대한 도덕적 담론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실제적인 대화입니다."


여기서 해서웨이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프레임을 취했다. 비록 그녀가 낙태의 도덕성에 대한 담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더라도 이 대화는 극도로 도덕에 관한 것이다. 자궁 속의 아기를 인간이라고 법적으로 인정하면 부유한 유명인이든 가난한 소수 민족이든 여성이 억압받게 된다는 생각은, 이 문제에 스며들어 있는 비판 이론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사실 이것은, 과학이나 미국 헌법에는 낙태할 '권리'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조용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모든 사람을 억압하는 계층 아니면 억압받는 계층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로 나누고 그에 따라 문제를 결정하려고 하는 환원주의적인 세계관에 호소한다.


이것이 바로, 낙태를 옹호하는 선전에 있어 새로운 '민권적(civil rights)' 언어와 이미지이다. 이것이 바로 작은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기괴하게 억압하는 계층으로 묘사되는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뉴욕타임즈>와 해더웨이가 임신을 중절할 수 없는 여성은 법적으로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엉터리 같은 도덕적 추론에 따르면, 가장 취약한 당사자(아기)는 피해자 계층이라고 지정된 사람들, 즉 힘이 없다고 추정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명확한 도덕적 추론이나 과학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억압받는 계층은 틀릴 수 없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이것은 논쟁이 아니라 조작 전술에 불과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낙태의 도덕성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고 비판 이론적 분위기를 뚫고 생명을 옹호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생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억압하는 계층이 아니다. 대부분의 임신 돌봄 센터를 운영하는 천주교 신자인 작은 할머니들을 보라. 프로라이프 지지자들은 지난 2년간 좌절스러운 입법 결과로 인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반대 진영에서는 이 논쟁을 모호하게 만들고 싶을지 모르지만, 프로라이프 지지자들은 그럴 수 없다. 논쟁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피해자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항상 태아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우리의 법과 문화가 그 진실을 반영할 것을 항상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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