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대로 거두는 대학 교육
: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05/1/24)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N6p44bO_zbY
(2) 번역 스크립트
지난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전국의 많은 대학 캠퍼스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뉴욕의 컬럼비아대, 하버드, MIT, 보스턴의 에머슨 칼리지,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 등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가자 연대 캠프'가 세워지고 유대인 학생들이 협박과 폭행을 당했으며, 시위대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을 중단하고 이스라엘 대학과의 학문적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 유대인 학생들은 "폴란드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명백히 수용소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마치 이스라엘이 10월 7일의 잔학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대량 학살 자금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어느 강과 바다인지도 모르면서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외친 이들도 있었다.
학생 시위대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이번 봉기가 10월 7일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벌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소위 '탈식민지화' 또는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종식과 같은 훨씬 더 급진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 성향의 학생들은 이슬람 테러리즘과 그리 미묘하지는 않게 연관된 경우 등, 시위 대열에 뛰어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일부에는 적어도 196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 오랫동안 만연해 온 '젊은이들에 대한 숭배'가 있다. 젊은이들이 국가의 양심이며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운동은 항상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미국의 민주 사회주의 운동가의 글에서 명확하게 표현되었다.
"역사에 있어 좋은 법칙은, 지배 계급의 편을 들면서 학생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는 것이다. 모든 시대.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언제나 그렇다."
역사를 이렇게 수정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사관은, 무엇보다도 지배 계급에 대항하는 학생 운동이 독일의 나치 운동과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을 활발히 주도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캠퍼스 시위의 경우, 지배 계급이 누구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시위대에 대한 학교 관리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노아 로스만은 내셔널 리뷰 기고문에서 엘리트 대학에서 특권을 누리고 신탁 기금을 받는 아이들이 캠퍼스에서 야영하는게 억압받는 자들의 봉기로 보기 어렵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더 적절한 설명은 젊은이들이 순진하고 쉽게 조종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행동주의의 아이러니나 자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젊은이들이 순수한 도덕적 본능의 보고이며 항상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는 생각은 장 자크 루소의 생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순진함과 관심 받고 싶은 갈증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그 어느 세대도 전 세계를 향해 미덕을 과시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시민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강력한 욕망은 중독성이 강하다. 조이 풀먼은 이를 "(과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셀마-몽고메리 행진에 대한 시기심"이라 불렀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왜 학교에 시위를 벌이고 테러를 지지하는지 잘 모르는 이 학생들은 교육의 목표가 지혜가 아닌 행동주의에 있는 대학의 산물이다. 알 몰러에 따르면, 이것은 수십 년 전에 이미 분명해졌다.
"고등 교육이 사회 공학과 지적 혁명을 위한 실험실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탈식민지 연구'와 같은 전문 분야는 해방의 약속과 함께 스며들었고, 종종 민족주의 운동과 정체성 정치로 해석되었다."
다시 말해, 대학이 이러한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 괴물들을 상대해야만 한다.
교육이 세상을 변화시킬 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진보적인 비전을 적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동주의가 항상 좌편향적인 이유이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오랫동안 서구 고등 교육을 지배해 왔지만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최근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한 사립 기독교 대학의 총장은 학부모들에게 그 학교의 학생들이 현대 정치에 대해 그다지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의견을 가질 만큼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정치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이 무엇인지, 인간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국가의 역할이나 목적, 기능에 대한 역사상 최고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런 것들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캠퍼스 생활에 대한 그의 설명은 대부분 정확하다고 믿을 만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학은 기독교인 학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조차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하곤 한다.
T.S. 엘리엇은 모든 교육 철학은 인간됨의 의미에 대한 정의를 전제로 한다고 썼다. 많은 고등 교육이 교육의 중심 목적을 잃어버린 이유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교육은 우리보다 앞서 간 위대한 지성들이 이해하고 전수받은 대로 지성을 훈련하고 고결한 삶을 가꾸는 것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교육의 비전은 진리이시며 그 명령과 성품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는 분께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가 지금 미국 캠퍼스에서 보는 것은 행동주의가 교육을 대체할 때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이다. 이 학교들이 지금 혼란스러운 수확을 거두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는 크리스천들이 참 교육을 되찾을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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