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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폭풍우

  • Writer: Sang Lee
    Sang Lee
  • Jun 20
  • 2 min read

삶의 폭풍우

2025/04/09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D 패젯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o_nNV_noUpM


(2) 번역 스크립트 :

80년 전 오늘, 제3제국의 쇠퇴기에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목사와 사제를 비롯한 많은 동료 독일인들이 히틀러와 제3제국의 민족주의 사상을 받아들일 때, 본회퍼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그의 저항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 본회퍼도 가담했음이 드러났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한 후, 독일 개신교 단체의 대부분은 친나치 지도자들의 감독에 복종했다. 소위 '독일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종주의, 국가주의, 우생학적 전체주의 정권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타협했다. 타협 덕분에 그들은 나치의 교리를 어기지 않는 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본회퍼는 마르틴 니묄러, 칼 바르트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반역했다. 그들은 또한 타협하는 교인들을 반대했다. 본회퍼는 반체제적인 고백교회와 신학교 설립을 도왔으며, 저항적인 바르멘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그는 이전의 평화주의를 거부하고 히틀러의 폭정에 저항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맡았고, 결국 미치광이를 암살하는 음모에 가담했다.



본회퍼는 이러한 모든 활동에서 신실함과 용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나치 테러 초기에 본회퍼는 처음에는 영국, 그 다음에는 자유롭고 안전한 미국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조국이 그러한 악을 마주하고 악행를 저지르는 동안 안전한 곳에 머물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몇 주 전인 1939년, 본회퍼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에게 편지를 보내 "이 시대의 시련을 동포들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에서 기독교적 삶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본회퍼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본회퍼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의 신학은 때때로 길을 잃었고 혼란스러웠다. 실제로 그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 중 한 사람인 칼 바르트도 신학적인 문제와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마틴 루터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처럼 저명한 인물들도 놀라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지만 행동과 신념에 결함이 있었다.



물론 이것이 성경에서 영웅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는 성경의 믿음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위한 용사들의 리스트가 나온다.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최고의 인물들도 그들의 승리만큼이나 결점도 유명하다. 삼손, 기드온, 입다와 같은 일부 인물들의 경우 어떻게 그들이 영웅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영웅들 사이에 포함되어 있다.



불완전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을 때의 위험이 그저 다른 사람의 죄를 덮어주면서 우리 자신의 죄도 변명하려는 유혹만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늘 노력하기보다는 모든 것이 바로잡힌 상상의 내일을 기다리려는 유혹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본회퍼로부터 또 다른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는 저서 『윤리학』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 이곳에서 충실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순간의 변덕에 흔들리지 말고 옳은 일을 과감히 행하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지금 연연하지 말고 용감하게 현실을 붙잡아라. 생각의 도피가 아니라 행동할 때에만 자유가 있다. 결심을 굳히고 삶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라."



본회퍼에게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장소에서 살아야 하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와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대가가 크더라도, 우리가 그 일에 부적절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이 삶의 폭풍우 속으로 부름을 받았다. 일부 세계관은 악한 세상으로부터의 정신적 또는 교회적 탈출을 가르치는 도피주의적 세계관이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는 성육신적이며, 이는 놀라운 함의를 담고 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처럼, 기독교는 단순히 옳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이는 위험을 의미한다. 실패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불완전한 믿음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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