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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회복

Writer: Sang LeeSang Lee

상상력의 회복 - 존 스톤스트리트/케이시 리앤더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YLg0JiSCUX0


(2) 번역 스크립트


윌리엄 블레이크는 "어리석은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 보는 나무와 같은 나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뉴욕 타임즈 기사에서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상상력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블레이크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신경과학의 발전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을 포함하는) 상상력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강조해 준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상상력은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의 생생한 경험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더 동정심을 느끼고 은혜를 베풀고 경이로움에 열려 있는 경향이 있다. 브룩스는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인 건강한 상상력을 키우는 데 소홀하다고 한탄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문제는 상상력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게 아니다. 사실 우리는 항상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현대 사회의 많은 측면이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문제는 우리가 정체성, 도덕성 등 오늘날 우리 삶의 다른 많은 측면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상상력에 대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칼 트루먼이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에서 잘 설명했듯이,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된 개인, 즉 자기 결정적이고 자율적이며 자기 표현만이 유일한 책임인 존재로 여긴다. 따라서 우리의 상상력은 외부의 기준점이 없이 형성되고 표현된다.



또 다른 문제는 중독성 있는 기술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할 때 발생한다. 화면은 매혹적으로 보이게 설계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상상력을 건강한 방식으로 형성하도록 설계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순간과 경험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잘못) 묘사되거나 우리가 행복하거나 영향력이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정도로 축소된 소셜 미디어의 형태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상상력의 가장 비옥한 토양을 포기하고 있으며, 목적이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없다면 진정한 경이로움이나 타인에 대한 진정한 연민은 존재할 수 없다.



물론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오늘날 인간은 이전 어느 세대보다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더욱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누구나 예술가, 음악가,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작품을 제작하고 표현하며 청중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요점은 무엇일까? 무한한 자기 표현의 문화를 궁극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무의미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도취, 외로움, 중독, 우울증, 자해가 계속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는 각자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를 가져온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방처럼,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모른 채 혼자서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댈러스 윌라드는 그랜드 캐년의 가장자리에 서서 "나는 대단하다"고 외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멋진 무언가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충분히 자신을 밖에서 바라보지 못한다. 만들어진 자아, 상상의 신, 목적 없는 세계 속에서 진정한 상상력은 시들고 죽어간다.



C.S. 루이스는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했다. "위대한 문학을 읽을 때 나는 천 명의 사람이 되면서도 나 자신으로 남는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는 사람, 그래서 실제 자신보다 부족해진 사람은 감옥에 갇힌 사람이다." 루이스는 에드먼드 스펜서, 존 밀턴, 조지 맥도날드의 작품에서 "거칠고 치열한 인생"과의 진정한 씨름을 느꼈다. 이러한 작가들은 인격, 선, 악, 목적, 의미와 같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반면 버나드 쇼, 조지 웰스, 데이비드 밀스 같은 무신론자들은 루이스에게 놀라울 정도로 빈약해 보였다.



"지구상의 그 어떤 것도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에 직면한 루이스는 자신은 이 세상보다 더 나은, 다른 세상을 향해 지음받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은 완전히 회심하기 이전에 이미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오늘날은 기독교적 상상력의 부흥이 절실히 필요하다. 제2의 C.S. 루이스가 자신의 상상력에 세례를 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은 인간됨의 중요한 측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창조주를 닮았다. 물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우리에게는 그런 힘이 없지만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의 말에도 엄청난 힘이 있다.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은 말씀과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는 마음,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에 호소하셨다. 그분은 상상력이 우리 마음과 정신에 가져야 할 올바른 역할을 완벽하게 표현하신 분이다. 그분에게서 우리는 상상력이야말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가장 풍성한 선물 중 하나이며, 인생을 이해하고 동정하고 현실에는 없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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