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신론에서 “유신론”을 바로 세우기
- Sang Lee
- May 9
- 3 min read
새로운 유신론에서 “유신론”을 바로 세우기
2026/1/15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SEaOOSFg7Pg
(2) 번역 스크립트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샘 해리스,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아얀 히르시 알리와 같은 인물들이 하나님은 망상이며 종교는 독이라고 크게 외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클레어몬트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한 에세이에서 매슈 슈미츠는, 9·11 이후 급부상하여 종교를 갈등과 문화적 쇠퇴의 근원으로 비난했던 “신무신론(New Atheism)”이 이제는 대체로 그 수명을 다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운 유신론(New Theism)”이 대신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슈미츠는 그 증거로 2025년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 제시하였다. 로스 다우댓의 『믿으라: 왜 모든 사람이 종교적이어야 하는가(Believe: Why Everyone Should Be Religious)』는 신앙이 그럴듯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조너선 라우시의 『엇갈린 목적들: 기독교와 민주주의 사이의 깨진 약속(Cross Purposes: Christianity’s Broken Bargain with Democracy)』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서 종교의 사회적 효용을 옹호한다. 여기에 찰스 머리의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Taking Religion Seriously)』, 즉 종교의 중요성을 경험적 자료로 변호하는 책, 그리고 세속 사회가 경이와 신비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는 로드 드레허의 『경이로움 속에서 살기(Living in Wonder)』도 추가할 수 있다.
이 저작들을 함께 보면, 현재는 엘리트 주도로 나타나고 있으나 더 넓은 문화적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는 하나의 새 유신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결정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유신론을 어설프게 건드리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시는 하나님 야훼를 만나는 것은 전혀 같은 일이 아니다.
C. S. 루이스는 막연한 영적 관심에 머물러 있다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충격을 받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 살아 계셔서 줄의 반대편에서 끌어당기시는 분을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도둑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저 복도에서 진짜 발소리가 들린 것 아닐까?” … “우리가 정말로 그분을 발견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거기까지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더 나쁜 것은, 만일 그분이 우리를 먼저 발견해 버리신다면 어떨까?”"
참된 믿음은 단지 “영적 세계”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을 떠받치는 세 가지 기본적이며 영원한 진리 위에 세워져 있다.
첫째,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이 전제는 유신론을 무신론, 유물론, 불가지론과 구별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라는 이 전제로 시작한다. 성경 외에도 아퀴나스, 투레틴, 셰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숙고할 이유들을 제시해 왔다.
둘째,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인격이시다. 이 전제는 기독교를 만물 자체가 곧 ‘신’이라고 보는 범신론과,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고 보는 다신론으로부터 구별한다. 단지 어떤 힘에 불과한 ‘신’은 알기보다는 이용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인격이시라면, 그분의 뜻이 궁극적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선택하셨으며, 그 궁극적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다. 이 전제는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들, 심지어 다른 유신론적 종교들과도 구별한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참된 유신론은 우리가 만들어 낸 ‘신’이나, 우리 조건에 따라 우리와 관계를 맺는 존재로 축소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어떠하신 분이신가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알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알리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된 책임을 지는 것은 바로 그 계시에 응답하는 일이다. 신명기 29장 29절이 가르치듯이, “감추어진 것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 찬송가 작가 윌리엄 카우퍼의 말대로, “하나님은 스스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시는 분이시고, 그분이 그것을 분명히 하실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창조 세계와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9–20절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창조를 통해 처음부터 분명히 드러난다고 기록하였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일반 계시”라고 부르며,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충분하다. 그러나 같은 본문은 인간이 반역과 악함으로 그 지식을 억누르려는 경향도 함께 드러낸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썼듯이, 하나님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계시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사람은 이 “특별 계시”에 응답해야만 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실과 하나님의 말씀 둘 다가 우리에게 강력하게 다가오며, 어느 하나라도 무시할 핑계가 없다고 고백한다.
이 “새로운 유신론”의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얀 히르시 알리의 경우일 것이다. 그는 이슬람(또 하나의 유신론)과 무신론을 거부한 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믿음에 이르렀다. 이제 알리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자유로워졌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트루스 라이징(Truth Rising)』에 담겨 있으며, 더욱 자세한 내용은 새로 나온 『트루스 라이징 스터디』에서 다루어진다. 자세한 정보는 truthrising.com/cols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새로운 개방성을 알리는 신호로서 “새로운 유신론”이 등장하고 있다고 기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막연한 영성이나 실용적 유용성 이상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아는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이자 부르심이다. 이 순간을 활용하여, 육체로 충만히 나타나신 하나님의 충만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성경이 말하듯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유일한 분을 가리켜야 한다.
이 브레이크포인트는 앤드루 카리코와 공동 집필하였다.
Truth Rising 영화 및 심화 스터디 영상 링크(한국어 자막):
Truth Rising 영화 풀 버전:
The Study (후속 강의):
Part 1: https://youtu.be/tohKa-ZhJNI
Part 2: https://youtu.be/hEMj5UmFhow
Part 3: https://youtu.be/2x1mShRVH9w
Part 4: https://youtu.be/bqi5b7NV6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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