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와 거대 복제양 (2024/11/11)
-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PPPomVzW2x0
(2) 번역 스크립트:
양은 큰 사업이다. 양털로 눈을 가리고 속일 수는 없다. 실제로 81세의 몬태나 주 남성이 감옥에 갇힐 정도로 큰 사업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아서 슈바스가 거대양을 불법 복제하고 이를 이용해 더 큰 잡종을 생산한 혐의로 6개월의 연방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동물을 목장에서 키운 뒤, 수익성이 매우 좋은 야생동물 사냥 사업에 쓰고자 했다. 2013년 슈바스는 키르기스스탄의 희귀 보호종인 큰 뿔 양 마르코 폴로 아르갈리의 신체 조직을 입수했다. 그런 다음 복제 시설과 계약하여 사냥꾼들이 찾는 고액이며 둥근 나선 뿔을 가진 136kg의 잡종인 '몬태나 마운틴 킹'의 배아를 만들었다.
슈바스는 마운틴 킹을 북미산 큰뿔양과 교배시켜 더 큰 잡종 양을 만들어 한 마리당 최고 10,000달러에 폐쇄된 사냥 구역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전국의 육종가들에게 수십 개의 DNA 샘플을 판매했다. 따라서 이 쥬라기 공원 식의 잡종이 얼마나 많은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슈바스의 벤처 사업은 수많은 자연 보호 및 상거래법을 위반했다.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 보호국의 한 부국장은 “질병을 도입하고 야생 양 개체군의 유전적 무결성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이 기괴한 이야기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의료/유전자 실험에 대해서는 윤리적 한계를 인식하고 시행하는 데 그토록 능숙하지만 왜 인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이 두 가지 논의는 한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복제 양 돌리를 기억하는가? 복제 양이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30년 전이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복제 실험으로 칭송받았던 돌리는 이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특히 인간에게 이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 여부와 방법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언론 보도에는 성공 사례로 알려진 이면의 처참한 실패에 대한 내용은 숨겨져 있었다. 돌리는 일반 양 수명의 절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고, 수백 번의 시도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양이었으며, 그 중 대부분의 양은 기형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인간 배아 복제를 금지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류에 대한 영향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장애인들의 희망을 꺾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부시의 정책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금지를 푼 이후에도 약속했던 인간의 배아 줄기세포를 사용한 치료법은 실현되지 않았다. 반면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 줄기세포 연구는 수백 가지 치료법을 개발했다.
사실 부시는 자신을 비판하거나 후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다. 그의 정책은 뛰어난 전문가 패널을 소집한 후 등장했다. 대통령 소속 생명윤리위원회에는 배아를 복제하고 실험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가진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 윤리학자, 법학자, 심지어 신학자까지 참여해 배아 복제를 해야 하는지,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들의 연구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윤리'는 인간의 인격과 가치에 대한 폭넓은 자료를 참고로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규제를 완화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생명윤리위원회에 있던 신학자, 철학자, 윤리학자들을 더 많은 과학자와 연구자들로 교체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문제점은 기술이 이만큼 발전한 오늘날에는 더욱 분명해졌다. 몬태나주의 한 노인도 혼자서 괴물 양을 만들 수 있다면 중국에서 현재 인간 복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상상해 보라. 슈바스가 과학이 개입하도록 한 행위에 대한 우려와 만연한 인간 복제에 대한 무관심을 비교해 보라. 시험관 아기, 대리모, 생식세포 '기증'을 통해 동성 커플이나 임신과 출산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문자 제작처럼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윤리적인 문제와 무관하게 커플, 부부, 기타 관계별로 짜 맞춰 아이를 구매, 생산, 배포한다. 미래에는 어떤 기술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지 누가 알겠는가?
무엇이 되든 우리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과학의 일관된 추세는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다. 아서 슈바스가 양에게 했던 일을 인간에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제동을 걸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얼마 전 대선 토론회에서 카말라 해리스는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가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전문가가 누구인가?”였다. 복제나 시험관 아기 시술과 같은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 숙달된 기술을 사용할지 여부를 알고, 그 기술이 사람들의 번영에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고, 누가 그러한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는지 아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러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능하거나 이익이 되는지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시로 묻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연적으로는 결코 나오지 않았을 복제양 돌리는 수십 년 전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어쩌면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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