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바라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2024/12/23-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rDCVu0VIofo
(2) 번역 스크립트 :
사람들은 조부모가 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 알았다면 아이를 낳기 전에 조부모부터 될 걸 하는 농담을 자주 한다. 손주를 갖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성인들이 경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부모는 갈수록 보기 드물다. 2014년에는 50세 이상 인구의 60%가 손주가 한 명 이상 있었다. 하지만 2021년에는 그 비율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록적인 출산율의 감소는 가족을 키우는 데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노년기에 대가 끊기는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 주된 이유는 이제 중년에 접어든 밀레니얼 세대가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캐서린 피어슨은 최근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조부모가 되지 못한다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자녀가 대를 이을 '빚'을 지지 않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자녀가 부모 노릇을 거부하면 깊은 그리움과 상실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자녀를 원하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 특히 자녀는 선택 사항이며 자녀를 갖는 유일한 이유는 개인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는 표현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생각을 가진 자녀의 부모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자녀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부모는 자식의 결정에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될 수도 있었을 한 여성은 피어슨에게 "이 결정은 내 아이들에겐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하고 나서 서글프게 덧붙였다. "전 손주를 못 볼 거에요. 제 인생에서 그 부분은 이제 끝났어요." 작은 발소리가 들리기를 기대했지만 고요한 황혼기를 맞이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성인 자녀들이 다시 생각하도록 설득했으면 한다. 한 어머니는 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딸에게, 10년 후의 너는 "지금의 너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라며 항상 이렇게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드럽게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피어슨에 따르면, 그녀의 글에 대해 대부분의 밀레니얼 세대는 소셜 미디어에서 적대적으로 반응했다. "어떻게 감히 손주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반응은 대화 전체를 '침묵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과거 세대에서는 희망에 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가족을 격려했지만, 이제는 자녀가 30대가 되어서도 미혼인 경우가 많으며, 기후 변화, 인종 차별, 학교 총격 사건 등을 이유로 자녀를 갖지 않는다. 69세의 한 엄마는 자신의 딸이 "이 주제는 더 이상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완벽하게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생각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은 상상하기 어렵다. 손주를 갖지 못하는 것이 왜 비극인지와 그 슬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관에 대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우리 대부분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말할 수 있는 언어조차 잃어버렸다. 후손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선하고 정상적인 일이며, 그 희망이 무너질 때 가슴이 아프다.
이 순간은 또한 생각과 그 결과가 세대 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자녀는 불필요한 짐이거나 선택 사항이라는 생각이 밀레니얼 세대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세대에서 논리적 결론에 도달했다. 형제자매, 사촌, 숙모, 삼촌, 조부모 등 한때 흔했던 가족 관계가 빠르게 사라지고 대체되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세상은 더 외로워졌다.
피어슨의 글은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해야 한다"고 한다. 조부모가 되지 못하는 고통은 인정하고 정당화해야 하며, 부모가 다 큰 자녀의 모든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자녀는 상품이 아니므로 누구도 손주를 '빚진'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선택은 다른 선택보다 사회에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비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기록적으로 높은 것은 사람들과 우리 사회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은 또한 자녀에 대한 긍정적 관점 등 반문화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아이들이 짐이나 부속품이 아니며 기쁨을 가져다주고, 언젠가 바라건데 그 아이들도 주님의 뜻에 따라 이와 동일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을 자녀들이 확실히 알게 해줄 수 있다.
이중 어떤 것도 단독으로 우리의 인구학적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자식의 자식을 기대하는 것이 다시 괜찮은 일이 되기 전까지는 인구학적 미래 자체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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