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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에서는 옳고, <위키드>에서는 잘못된 것

  • Writer: Sang Lee
    Sang Lee
  • Mar 30
  • 2 min read

<스파이더맨>에서는 옳고, <위키드>에서는 잘못된 것

(2025/3/12)-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B9mXGoUwpz8


(2) 번역 스크립트 :

몇 주 전, 오랫 동안 디즈니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총괄이었던 캐슬린 케네디가 그만둘 거라는 온라인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우리의 예술,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상태를 분석하는 소셜 미디어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케네디가 이 <스타워즈>를 지휘한 시기에는 논란이 많았다. <만달로리안>과 <안도르>는 히트작이었지만,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다른 작품과 사상들은 그렇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깨어 있는(Woke)” 스토리라인이 좋은 스토리텔링과 혼동되었을 때 더욱 그랬다. 예를 들어, <애콜라이트>의 제작자들은 이 시리즈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게이스러운”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아 한 시즌 만에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루터교 목사이자 사회풍자가인 한스 피네(Hans Fiene)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진보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트위터에 “현대 <스타워즈>의 실패는 캐슬린 케네디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웅이 우리보다 더 의롭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썼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들은 수년에 걸쳐 강등되었고, 초인적인 존재에서 인간으로 변했다. 토비 맥과이어의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은 적을 식별할 줄 알고 싸움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는 진지한 영웅이었다. 복수와 정의에 대한 더 깊은 질문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어두운 분위기의 <배트맨> 영화에서도 크리스찬 베일은 악당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오늘날 마블 영화에는 아무것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타노스의 편에 서게 되는 짖궂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다른 이야기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말레피센트>에서 악의 여왕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세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위키드>에서 사악한 마녀는 차별과 부패의 희생자이다. 마찬가지로, <무파사>는 동정을 호소하는 스카의 배경을 탐구하고 그가 악당이 된 이유를 제시한다. 이 용감한 신세계에서 영웅과 악당은 결국 그렇게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영된다. 서양의 학자들은 꽤 오랫동안 역사 속의 악당과 영웅을 “재구성”해 왔다. 워싱턴, 제퍼슨, 링컨은 결점은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권력을 위해 살았던 착취자들이었다. 이런 관점은 상당수 문화적, 정치적 좌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극우파에서 처칠과 같은 서구의 지도자들을 악당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스탈린, 마오쩌둥, 히틀러와 같은 역사적 악당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거의 1세기 전 콜 포터가 노래한 것과 같다.


"세상은 오늘 미쳐가고 있다.


선은 악이 되었고,


검은 것은 흰 것이 되었고,


낮은 밤이 되었다."


선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역사로부터 배우는 일도 불가능하다. 선한 사람을 선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요소를 혼동한다면, 동화와 신화는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 허구이든 역사이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미덕과 구속력 있는 윤리 기준을 부정하는 다양한 비판 이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메타 내러티브를 단순한 권력 장악을 통한 강탈로 간주한다.


가장 좋은 이야기는 가장 선한 사람조차도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선과 악의 개념을 거부하면 그 결점을 인식하거나 그로부터 배울 수 없게 된다. 결국,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가능성은 없고, 모든 결점을 면제해 버리면 자신을 발전시킬 가능성도 없다. 기독교에서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실이기 때문에 더 나은 것이다. 그것은 허구이든 역사적인 것이든, 우리가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더 나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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