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정의로운 전쟁론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2) 번역 스크립트
바샤르 알 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된 후 미국과 이스라엘 전투기는 시리아의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실시했다. 특히 시리아의 기존 군사 인프라와 영향력 있는 이슬람 단체를 공격했다. 이 전술 전략은 단순한 기회주의가 아니었다.
시리아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아사드 정권이 비축한 첨단 무기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또한 시리아 정부가 붕괴되고 러시아로부터 버림받은 상황에서 워싱턴과 예루살렘은 모스크바와의 충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시리아는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내부에서 세 세력이 싸우고 외부에서 세 세력이 개입하면서 끊임없는 분쟁을 겪어왔다. 러시아는 미국의 동맹국과, 미국은 러시아의 동맹국과, 터키는 양 동맹국과, 이 세 나라 모두는 ISIS와 싸우고 있었다. 지금은 전투가 멈췄지만, 지역 전체뿐만 아니라 특히 새 정부 하에서 시리아와 아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운명은 여전히 심각하게 우려스럽다. 수십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추방된 상황에서 아사드 정권만큼이나 새 정부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전쟁은 언제나 비극적이지만, 특히 정당하게 수행되지 않았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가장 '이상적인' 전쟁이라 할지라도 전쟁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이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을 죽이는 일이 생긴다. 물론 훨씬 더 자주 도덕적인 구석이 잘리고 무고한 사람들이 표적이 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전도서에 나오는 '죽일 때가 있다'는 주장에 따라 어떤 형태의 정의로운 전쟁론을 받아들였다. 다른 이들은 평화주의를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교부 터툴리안은 "주님은 베드로의 무장을 해제할 때 모든 군인의 띠를 풀어주셨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다룬 가장 유명한 신학자는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시저와 야만인들이 난무하던 폭력적인 시대에 그는 무력과 폭력의 유혹을 이해하면서도 평화가 정의로운 전쟁의 올바른 목표라고 주장했다. 한 로마 장교가 군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서 계속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므로 전쟁을 할 때에도 중재자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정복함으로써 그들을 평화의 유익으로 이끌 수 있다."
1000여 년 후, 마틴 루터는 그의 저서 <군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서 전쟁의 문제로 고심했다. 그는 폭력의 공포와 회복적 힘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군인이 악인을 벌하고, 악인을 죽이고, 수많은 불행을 초래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기독교적 사랑에 완전히 반하는 비기독교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한 자를 보호하고 아내와 자녀, 집과 농장, 재산, 명예와 평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을 생각하면 이 일이 얼마나 귀하고 경건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복면을 쓴 낯선 사람이 팔다리를 자르는 것은 끔찍하지만 그 사람이 생명을 구하는 외과의사라면 그것은 정의로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강도나 폭행을 막는 것은 사악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행동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범죄자가 마음대로 하도록 방관하는 것도 정의롭지 않다.
무너진 세상에서는 종종 무력이 필요하다. 악은 저지되어야 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물론 타락이 피조물, 사람, 국가에 미친 영향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전도서에서 관찰했듯이 실제로 죽여야 할 때가 있다. 항상 깊이 후회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으로서 적절한 권세 있는 자에게 칼을 주셨다. 정의로운 전쟁은 악에 맞서는 회복의 행위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