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윌버포스의 신실하고 오랜 순종
- Sang Lee
- Apr 5
- 3 min read
윌리엄 윌버포스의 신실하고 오랜 순종
(2025/03/14)- 존 스톤스트리트/글렌 선샤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K-n2HqlB9T8
(2) 번역 스크립트 :
1787년 영국의 노예제 폐지론자 토마스 클락슨은 윌리엄 윌버포스라는 젊은 국회의원을 노예제 폐지 운동에 참여시켰다. 3년 전 회심했던 윌버포스는 노예상인이었다가 목사가 되어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 변신한 존 뉴턴과 친구가 되었다. 노예제의 폐해를 확신한 윌버포스는 의회에서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우기로 했다.
윌버포스는 병으로 1789년까지 노예제 폐지 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를 반대하는 적들은 절차적 장애물을 세워 표결을 막았다.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고 해마다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또한 윌버포스와 다른 노예제 폐지론자 연합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규모 캠페인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보이콧, 포스터, 슬로건, 청원서, 범퍼 스티커의 18세기 버전에 해당하는 카메오 등 오늘날 캠페인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전술을 개척했다.
1796년, 6년간의 실패 끝에 윌버포스와 그의 지지자들이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74대 70으로 실패했다. 반대파가 희극 오페라 표를 사서 법안에 미온적인 지지자들에게 나눠준 탓에 이들이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오페라 쇼를 택한 소위 노예제 지지자들과 야당의 더러운 속임수를 모두 마주하는 것은 분노와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이에 윌버포스는 이듬해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또다시 실패했다...
윌버포스의 노력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이 죽었다고 선포했던 19세기 무신론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만들었던 문구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비록 이 문구는 무신론자가 끔찍하게 위험한 책에서 쓴 글이지만, 기독교 경건주의 작가인 유진 피터슨은 후에,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님께 속함을 증명하면서 이 문구의 의미를 되찾아 와서 회복시켰다. <선과 악을 넘어서>에서 니체는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같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볼 때 항상 삶을 살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앞으로도 가져올 것이다."
이 진리를 기독교적이고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순종은 궁극적으로 대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그분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으신다. 의미는 모험이나 이타주의 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윌버포스는 노예무역의 폐지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위대한 목표' 중 하나라고 믿었다. 또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해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그는 인내했다. 따라서 그의 공적인 인생은 척 콜슨이 책상 위에 붙여두었던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이다"라는 또 다른 문구의 완벽한 전형이기도 하다.
이것은 선거, 행정명령, 인공 지능이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다 주는 오늘날에는 기억하기 어려운 진리이다. 이번 대통령이나 의회가 주는 것은 다음 대통령이나 의회가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다.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은 수십 년 동안 노예제도에 대한 여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노예제 폐지를 위한 바른 법안을 발의했다. 마침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까닭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법안은 노예제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 대의를 위해 수십 년 동안 해마다 패배하면서도 끈질기게 싸워온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프로라이프 운동이다.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이 마치 관할권의 문제인 것처럼 이 문제를 '각각의 주'로 돌려보내면 싸움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콜로라도와 뉴욕과 같은 낙태를 옹호하는 주에서는 무고한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그리고 소위 프로라이프를 지지하는 주에서도 낙태할 권리가 확대되고 있다. 법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서도 낙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프로라이프의 대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유효하다. 노예제도처럼 말이다.
1807년 3월,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거의 20년 만에 이 법안은 마침내 283대 16으로 통과되었다. 그 후 노예제 폐지 운동은 노예제 자체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 싸움은 26년이 더 걸렸다. 그 무렵 노예제 폐지 운동은 더 이상 윌리엄 윌버포스가 주도하지 않았다.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의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윌버포스는 노예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임종 직전이었다. 그는 죽기 3일 전에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그가 평생을 바쳐온 대의의 성공을 보게 허셨고, 그 대의를 위해 신실하게 10년이 넘도록 싸우면서도 보지 못했던 성공을 보게 하셨다.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도 싸움에 동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윌버포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이다. 그리스도께 오랫동안 순종하며 사는 인생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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