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의미
1. 영어 오디오 서비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오디오 서비스: https://youtu.be/xsHhWOVl_Lk
(2) 번역 스크립트: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던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a)의 사고를 따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사물 자체에 존재하는 특질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란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며 각자의 생각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아름답다고 누군가 느끼는 것에 대해 다른 누군가는 심지어 기형이라 인지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흄은 마치 10대 소년이 엄마와 아빠에게 트집 잡기를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게 논지를 이어간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규제하는 척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에 순순히 따라야 한다."
객관적 진리와 보편적 도덕의 개념을 거부하면서, 현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인간의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범주가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의 대상이라고 가정한다. 음악은 재미있거나 신랄하거나 산만할 수 있다. 심지어 치료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초월적이거나 영원하거나 객관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다.
최근 업스트림 팟캐스트에서 동료인 셰인 모리스는 듀크 신학대학원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신학자인 제레미 벡비 박사와 음악과 의미(b)에 대해 논의했다. 음악과 신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벡비 박사는 음악은 사실 중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이자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가리킨다.
벡비 박사의 말이다.
"저는 무신론자 음악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저명한 학자였죠. 그는 음악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서로와 물리적 세계에 맞도록 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소속감에 관한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오, 정말 흥미롭군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기독교가 이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거에요. 즉, 단순히 스스로를 표현하거나 속마음을 털어 놓는 개인이 된다는 것이...이 세상에서 우리가 주로 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를 위해 만드셨고 이 물리적 세계와 조화롭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음악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그것은 언어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수백 가지의 것, 이런 종류의 세계관에 대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플라톤에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성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선함, 진리, 아름다움이라는 이 "세 가지 초월성(c)"에 대해 성찰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이것들이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단서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 아름다움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그가 하신 일에 근거한 객관적인 현실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이 인간에게 그렇게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무엇이든 아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조차도 아름다움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씨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셉 피어스(d)는 The Imaginative Conservative 지의 최근 기사(e)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 답은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머리와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마음을 만지는 아름다움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f)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친구인 19세기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왜 그렇게 믿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g).
"그는 결코 진실과 아름다움을 분리하지 않았다. 예술적 창조성에 있어 그는 아름다움과 선함, 진리를 분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옳았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만 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아름다움과 별개로 취해진 선함이란 흐리멍텅한 느낌, 힘없는 용승일 뿐이고, 추상적으로 취하는 진리는 공허한 단어이다. 진리와 선함이 없는 아름다움은 우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이것들은 분리할 수 없는 세 가지 형태의 하나의 절대적인 생각이었다."
이 말이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 경험과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포함한 예술의 표현은 경험, 문화, 지식, 다양한 수준의 미덕에 의해 형성된 취향과 선호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인식되어야 한다. 바흐의 협주곡이 현대의 록 발라드보다 미적 가치와 기술적 우수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둘 다, 무의미한 혼돈과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의 질서와 설계된 방식에 대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다.
음악이 단순한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 그 이상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이유를 알 수 없더라도 음악적 아름다움은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우주의 의미와, 우주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브레이크포인트는 케이시 리앤더와 함께 작성했다. 이 문화적인 순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더 많은 자료를 보려면 breakpoint.org 을 방문하기 바란다.
#예술#아름다움#기독교세계관#음악#철학#세계관#Art#Beauty#ChritianWorldview#Philosophy#Worldview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