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싱글맘이 되는 사례의 증가
(2025/01/30) -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6JDwHcBmt6Y
(2) 번역 스크립트 :
최근 <뉴욕 타임즈 매거진>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IVF)을 고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기사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두 커플이 착오로 몇 달 동안 서로의 딸이 바뀐 채,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두 부모는 아이를 바꾸는 “견디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환영하고, 돌보고, 사랑했던 아이보다 자신들의 유전학적 딸을 양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을 다뤘지만,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렇게 규제가 부족한 산업이 더 많은 관리 감독을 필요로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간과된 것은, 이런 종류의 보조 생식 기술에 있어 이렇게 중요한 문제들은 잘못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잘못된 기이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이 가족에 대해 설계하신 계획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모든 순간마다 잘못되는 모든 일들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부모의 한쪽이 다른 부모가 그 아이의 삶에 관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데도 아이를 임신하는 경우이다. 드물게 발생하는 사례처럼 배아를 혼동하는 경우와는 달리, 이런 종류로 부모 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은 보조 생식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가디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불임 치료를 받는 미혼 여성의 수가 지난 10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하여, 시험관아기(IVF)의 증가율과 동성 커플의 증가율을 모두 앞질렀다고 한다.
<가디언>의 아멜리아 힐 기자는 혼자 아이를 키우기로 선택한 몇몇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그들은 “스스로 해냈기 때문에 힘을 얻었다”고 느낀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들은 스스로를 “정자 기증자”의 지위로 강등시킨다. 생물학적 시계가 똑딱거리는 것을 의식한 45세의 한 미혼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을 거에요…파트너 없이 하는 것이 아마도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내 딸이] 아빠가 없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로 단순히 잘 안 될 수도 있는 관계를 서두르지 않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아기 엄마에 따르면, 그 경험은 해방감을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이 아빠가 당신을 떠났나요? 아니면 당신이 그를 떠났나요?’라고 묻곤 했어요. 그때 ‘아니요, 제가 스스로 한 거예요!’라고 말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나 그녀는 혼자서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아이를 혼자서 가지게 되는 여성이나 남성은 없다. 그녀와 서구에서 아이를 가지기 위해 과학에 의존하는 수천 명의 싱글 여성들의 경우, 항상 아버지가 관여한다.
아빠가 살아 있지만 아이 곁에 없는 다른 상황이라면 그런 아빠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아이와 엄마는 당연히 버림받고 억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아빠가 아이를 버리는 게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고 발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세상의 어떤 완곡한 표현을 갖다 쓰더라도 이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바꾸지는 못한다. 일부러 아버지가 없는 아이를 키우려고 임신을 하면, 아버지가 떠난 것과 똑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기술이 활용되었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일부러 싱글맘이 되는 여성과, 대리모와 “기증자”를 돈을 주고 고용하는 동성 커플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연민/동정심(compassion)에 대한 개념이 얼마나 선택적인지가 드러나고 있다. 주요 언론 매체에서는, 아이가 바뀐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드물고 끔찍한 사례에 대한 긴 기사를 싣지만, 아이가 엄마나 아빠로부터 떼어졌을 때 이것을 “자유”와 자율성을 축하해야 하는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불평할 수 없다.
이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비극의 배후에는 항상 성인 중심적인 가정이 놓여 있다. 아기는 성인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성인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보다 우선이다. 결혼, 엄마, 아빠는 육아에서 선택적 요소다. 가족은 마음대로 재구성하고 해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대리모와 배아를 파괴하는 시험관아기를, 성인이 원하는 것을 얻는 한, “아이들은 괜찮을 것”이라는 동일한 가정 하에서 접근한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결혼과 출산에 관한 첫 번째 고려 사항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아이들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도록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모든 기술이 “바른”(right) 방향으로 작동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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