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의 시대가 도래한 영국 1. 영문 원문 오디오 서비스 및 스크립트 https://www.breakpoint.org/britains-1984-moment/
2.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와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서비스: https://youtu.be/y6ym7S0SEdQ (2) 번역 스크립트 영국은 20세기의 독재에 용감하게 저항하던 전통으로부터 전향해, 21세기에는 독재를 포용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 주, "보수" 정당이 주도하는 영국 의회는 조지 오웰이 허구적으로 그려냈던 "사상 범죄"를 현실로 만들었다.(a) 하원에서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낙태 클리닉 주변에 검열 구역을 설정한 후, 이 근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조차 불법화하는 안에 299대 116으로 찬성했다.
영국 자유수호연합의 한 변호사가 말했듯이(b), “오늘 투표는 이 나라의 기본권과 자유에 있어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다. 의회에는 절대적인 권리인 자유로운 사상을 범죄로 취급하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개인의 자유를 수용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의회는 검열을 지지하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과 합의에 의한 대화와 같은 평화적인 활동을 범죄로 규정하기로 결정했다.
법은 무의미한 협박이 아니다. 지난 달, 이사벨 본-스프루스와 숀 고프는 공공장소에서 기도했다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행히 버밍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c). 두 사람 모두 공적 활동을 방해하거나 어두운 밤에 사람들을 깨울 정도로 소란스럽게 기도했다고 체포되지 않았다. 그들은 낙태 클리닉 밖에서 조용히 기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d). 고프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동안, 본-스프루스는 경찰이 그녀가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체포되었다. 고프는 사제복을 입은 사실 자체가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경찰로부터 질책을 받았다(e).
이 투표 전날인 3월 6일, 본-스프루스는 낙태 시설 근처에서 조용히 기도했다는 이유로 다시 체포되었다. 그녀가 경찰에게 금지된 활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경찰은 그녀가 "기도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범죄"라고 대답했다(f). “사람이 내부적으로 정신 활동을 하는 것이 형사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지 생각해 보라.
이런 이야기들은 더 광범위한 최근의 경향의 일부이다. 최근 한 영국 남성은 "자부심(성 소수자 상징)”깃발에 대해 무언가 부정적인 의미의 트윗을 했다고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g). 경찰은 그의 발언이 ‘"매우 모욕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찰과 '자발적'으로 면담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10일 이내에 답변을 하지 않으면 기소당할 처지였다. 거의 웃음거리가 될 상황으로(h), 납세자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테러 방지 대책 위원회가 최근 “1984년”과 “멋진 신세계”뿐만 아니라 톨킨의 “반지의 제왕”, G.K. 체스터턴의 시, 셰익스피어 작품 전부를 "극우" 성향의 징후로 볼 수 있는 목록에 포함시켰다.
자유를 옹호하는 풍부한 역사를 가진 영국이 어떻게 자국의 문화가 세계에 배출한 가장 위대한 고전들 중 일부를 위험한 것으로 분류하면서 기도와 평화적인 시위를 금지하는 장소(i)로 발전했을까? 아이러니에 대한 인식이 유쾌하게 잘 발달된 나라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1984년”같은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고 걱정할 수 있을까?
위대한 사회 비평가 故 닐 포스트먼은 한때 미국인들이 1984년 서구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에 빠지지 않은 데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면서 막상 올더스 헉슬리의 전체주의적 악몽을 그린 “멋진 신세계”에 빠질 위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점을 관찰했다. 포스트맨이 말했듯이(j), “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책을 금지하는 사람들이었다. 헉슬리가 두려워한 것은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책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웰은 우리에게서 정보를 빼앗는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줘 버려 사람들을 수동적인 이기주의자로 전락시켜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그 당시 포스트맨이 옳았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구치소나 고문실, 독재자의 감시 화면을 피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집과 주머니에서 빛을 뿜어내는 직사각형들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오웰이 상상했던 노골적인 전체주의보다는 헉슬리가 상상했던 사소한 쾌락에 사로잡힌 세계를 더 닮았다. 그러나 "개인적인 평안과 풍요(k)"를 쫓고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는 데 사로잡힌 이미 멋진 신세계에서 1984년을 실현시키는 것이 얼마나 더 쉬운지를 포스트맨이 놓쳤을지도 모른다.
이의를 제기할 권리는 한때 서양에서 가장 소중한 문화적 자산 중 하나였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자유는 이제 국가와 사회의 결합된 이익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단순히 동의만 할 수 있는 권리로 약화되고 있다. 진정한 양심의 자유는 단지 서구적이거나 심지어 미국적인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성에 속해 있는 보편적인 권리이다.
교회는 인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은 세계에서 자유를 옹호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웃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충성을 다해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양심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키며 모든 지상의 권력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리키기 때문에 방어할 가치가 있는 공동의 선이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는 인기 없는 사람들을 검열하려는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정말 보호해 준다.
이 브레이크포인트는 팀 패짓 박사와 공동으로 작성했다. 이 문화적인 순간에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더 많은 자원을 원한다면, colsoncenter.org를 방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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