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지 않다 (2024/10/29)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yVex5F3B8XU
(2) 번역 스크립트:
오늘날 종교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안전할까?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는 문화를 지켜보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주장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뉴욕타임스>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자 오랜 종교 자유 옹호자인 데이빗 프렌치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필 비셔의 <홀리 포스트>에 게시된 동영상에서 프렌치는 기독교인들이 정말 박해를 받고 있는지, 종교의 자유가 정말 위협받고 있는지 질문했다. 그는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대답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 대법원에서 종교의 자유가 크게 훼손된 지 14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종교의 자유는 안전합니다. 이 나라의 기독교 공동체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강력한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물론 법정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불의가 행해지기는 하지만, 미국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기준에 따른 의미 있는 '박해'를 받는 건 아닙니다. ... 종교의 자유에 대한 법적 보호는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마치 영국이 (1940년 독일에 의한) 영국 대공습 당시 가장 잘 보호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최우선되는 자유를 경계하며 싸우는 많은 수호자들이 있고 그들이 법정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가 이처럼 지속적이고 공격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싸워야 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고용주가 제공하는 의료 보험에서 “사후 피임약”과 같은 피임, 불임 및 낙태 유도 약물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나 제빵사가 동성 결혼식을 위해 케이크를 굽도록 강요하는 지난한 싸움, 주일학교 책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된 켈빈 코크란 서장이나 배로넬 스터츠만, 트리니티 루터교 기독교 학교 사건 및 타이틀 나인 법률, 기타 많은 사례와 논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한 공격은 정부 최고위층에서 비롯되었으며, 특히 대법원이 이른바 '동성 결혼'을 법으로 만든 이후 지난 1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지난 주,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시행 규칙은 피임약과 낙태약에 대한 보험을 다시 한 번 강제로 적용하려고 한다.
종교인인 원고와 피고나 종종 승리한다는 사실은 종교적 자유에 대한 인기나 안전보다는, 미국의 건국 문서와 대법원의 힘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단순한 사실은 프렌치가 좋게 말하는 법정에서의 '승리'는 종교적인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소송과 정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필요했던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반대파가 얼마나 결의에 차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을 연구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법정에서 영원히 계속 승리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웨슬리 스미스가 <내셔널 리뷰>에서 지적했듯 종교의 자유를 위한 많은 법적 '승리'는 결정적인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콜로라도의 케이크 아티스트 잭 필립스는 13년 동안 법정에 끌려 다니며 절차상의 이유로 몇 번이고 승소를 거듭했다.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 결혼 축하 케이크 제작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든, 콜로라도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 기념 케이크 제작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든, 잭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축하 행사를 거부할 권리를 보호하는 확정 판결을 아직 받지 못했다. 그 동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대신, 자신을 방어해야만 했다. 최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13년 넘게 이어져 온 그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과정은 형벌과도 같았다. 언제나 그랬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 모든 일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버락 오바마가 처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축하하고, 홍보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는 이유로 공적 혜택에서 배제되어야 하는지 물었다면, 사람들은 “절대 안 된다”고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치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가 나머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법관, 또한 결국 법률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의지와 신념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문화가 종교의 자유를 고리타분한 유물이나 편견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정도로만 여기게 되고, 사람들이 신앙보다 성적 자기 표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면(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법원은 결국 이러한 신념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헌법은 누구도 정당한 절차 없이 생명을 박탈당할 수 없다고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태는 여전히 미국 전역에서 합법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헌법의 문구는 문화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박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는 프렌치가 옳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자유수호연맹'과 같은 단체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둔 것도 맞다.
그러나 종교가 점점 더 이상한 취미나 오래된 악처럼 취급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의 근거가 점점 더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반기독교적 정서가 공공연하게 확대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법원이 왜 소위 “편협한 사람들”의 신념과 자유를 옹호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법원은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프렌치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그런 입장을 고수할 수도 없고 고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법적인 틈새를 개척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그것은 문화와 직접 대면하고 신앙을 주변부로 밀어낸 가치와 가정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종교적 신념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되며, 이 첫 번째 자유가 다시 우리의 최우선 순위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진정한 국민처럼 행동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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