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의 수정주의 역사관 (2024/11/14)
- 존 스톤스트리트/글렌 선샤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hL1O1SD4J6E
(2) 번역 스크립트:
과거를 이해하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사건을 조사하고 세부 사항을 전달하는 것 이상이다. 여기엔 해석도 포함된다. 실제로, 특히 사실이 허구로 간주되고 허구가 사실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은 거꾸로 된 세상에서 '역사'는 조작되어 사회적 의제를 진전시키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신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억압 계층과 피억압 계층을 찾는다. 그들은 실제로 억압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억압의 피해자를 찾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를 미리 정해진 범주로 분류한 후,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이미 안다. 이 관점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억압 계층이므로 악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은 모두 소외되고 억압받는 피해자 계층이므로 죄가 없고 선한 존재로 간주한다.
이런 버전에 따르면 미국은 1619년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이야기는 모든 서구 문명과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의 이야기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역사는 유색 인종을 지배하는 악하고 착취적인 식민지 세력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교육을 통해 널리 주류의 서사가 되었고 미디어, 대기업, 법조계, 정부의 목소리를 통해 조장되고 있다.
미국과 서구의 정체성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에 맞서겠다고 이와 똑같지만 반대가 되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했다. 완전히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십자군 전쟁 식의 효과도 없지만(미국의 공립학교 시스템에는 확실히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대응은 극우 진영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극좌 진영의 역사 수정주의를 물리치는 데 더 큰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연방 제도, 주정부의 권리, 수정헌법 제10조를 파괴하여 중앙 정부에 권력을 집중시켰고,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경제에 있어 워싱턴의 권한을 크게 확대했으며,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히틀러에 맞서 스탈린을 지원함으로써 동유럽을 소련의 지배에 맡기고 공산주의가 서구에 침투하는 문을 열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좌파가 학교, 기관, 정부를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미국이 이 전쟁에서 잘못된 편에 섰으며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파시스트들을 지원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전 세계의 문제에 개입할 필요가 있으며 군산복합체를 강화시키는 선한 쪽으로 작용하는 힘인 '필수적인 국가'로 미국을 보는 '전후 합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버전의 역사를 믿는 사람들은 미국이 자기 나라 일에만 신경을 쓰고 고립주의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미국이 백인 민족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이는 좌파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이데올로기와 국경 개방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이처럼 상반되고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역사관을 비교할 때 드러나는 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는 둘 다 강대국을 적으로 본다는 점이다. 둘 다 서로 다른 이유로 동일한 사람들 중 일부를 악당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극좌파에게 처칠은 식민주의 때문에 악당이 된다. 극우파에게 처칠은 스탈린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악당이다. 두 집단 모두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수행한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 둘 다 인종을 바라보는 초점이 비성경적이고 부도덕하다. 양쪽 모두 히틀러의 명예을 회복시키고 홀로코스트에서 자행된 악들을 줄이고자 하며,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하마스를 지원하려는 극단적인 반유대주의 성향이 있다. 물론 이 둘의 차이는 극명하고 급진적이지만 공통점도 뚜렷하다.
양측의 진실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척 콜슨은 이데올로기가 진리와 복음의 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봤다. 모든 사실을 미리 정해진 내러티브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은,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고, 역사가 얼마나 복잡 다단한 것인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는 부분적인 진실을 바탕으로 구축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는 해석적 틀이다. 인간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행위자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이야기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인간은 깊이 타락했으며 종종 이기적이거나 인종 차별적, 여타 죄악된 동기를 가지고 행동한다. 우리는 미국이나 미국인이 완벽하다거나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선을 보고 인정할 수 있으며, 우리 중 가장 좋은 사람조차 결점이 있고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역사에는 목적이 있음을 알고 있다. 역사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분께서 주관하시는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이 나라는 좌파나 우파의 이념적 순수주의자들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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