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세상에 대처하는 법
(2024/07/05- 존 스톤스트리트/자렛 헤이든)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https://youtu.be/-mGiN-9FHfU
(2) 번역 스크립트:
인간이 된다는 것은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는 것이다. 친구의 배신, 사랑하는 사람을 암으로 잃는 일, 다혈질 동료의 상처 주는 말, 배우자의 무관심 등 죄와 상처의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죄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개인적으로 죄를 짓지 않더라도 세상은 깨어진다.
우리는 주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거나 세상에 탐닉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싶어 한다.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세에서 사람이나 사물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권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 육체, 영적인 엄격한 훈련을 통해 고통과 쾌락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 자신에게 탐닉하라고 한다. 바울 시대에 방종의 메시지는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린도전서 15:32)였다. 다시 말해, 오늘을 위해 살고,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은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메시지는 종종 성적 '해방'이라는 잘못된 이름의 형태를 취하며 포르노, 이혼, 동성애, 성 정체성을 정상화하는 데서 볼 수 있다. 또는 맛있는 음식 탐닉, 충동 구매, 넷플릭스 몰아보기와 같은 미묘한 형태의 방종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분리와 방종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결국 두 가지 모두 기독교에서 타락한 세상으로 인식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헛되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죽음과 부패를 피할 수 없다. 선하게 창조된 이 세상은 인간의 죄가 가져온 저주 아래서 고통받고 있다. 첫 번째 부모의 불순종을 통해 죄와 그에 수반되는 결과가 세상과 우리 마음에 들어왔고, 그 이후로 죄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대신, 그분의 백성에게 죄를 속죄할 것을 요구하셨다. 구약성경에서는 희생을 통해 속죄가 이루어졌다. 끝없는 피의 제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고, 제사가 멸망을 향해 구부러진 인간의 마음을 결코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은 행동에 나섰다. 육신을 입고 자신의 아들을 바치심으로 최후의 희생을 치르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타락한 세상과 인간의 마음의 진흙탕과 수렁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셨다. 단순히 죄를 인정하거나 긍정하는 것을 넘어 그분은 죄의 힘을 깨뜨리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죄와 죽음은 패배했다.
따라서 이 타락한 세상의 고통과 모든 아픔과 슬픔은 세상의 일부이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또한 죄는 하나님에 대한 최후의 장애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고통을 통해 인류를 자신에게로 이끄신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변화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머리를 돌림으로써 죄를 물리치신다. 한 신학자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삶에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사고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바로 그 원동력"이다.
이 시대 문화와 죄를 부정하거나 방종하라고 가르치는 수많은 대체 종교와 세계관의 목소리와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고난을 통해 죄를 이기신 분을 신뢰하라고 요구하신다. 우리 힘으로는 타락한 세상을 피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설 때에만 우리는 이 깨어진 세상 속에서 평화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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