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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대성당 낙서와 아름다움의 힘

  • Writer: Sang Lee
    Sang Lee
  • Feb 2
  • 3 min read

성공회 대성당 낙서와 아름다움의 힘

2025/10/28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3rQN8U_M_08


(2) 번역 스크립트 :

올해 초, 호주 경찰은 신성한 원주민 성지를 낙서로 훼손한 두 남성을 체포했다. 그들이 스프레이로 그린 낙서는 폭이 30피트(약 9미터)가 넘고 높이가 6피트(약 1.8미터)에 달했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그들은 이런 불경스러운 낙서로 인해 아주 나쁜 주주(ju ju, 주술적인 힘)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거야. 조상들이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달 초, 캔터베리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에서도 유사한 낙서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체포된 사람이 없었다. 성당 측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시각 예술 자문이자 큐레이터”인 재클린 크레스웰(Jacquiline Creswell)에 따르면, 이 낙서는 “캔터베리의 주변부 공동체에게 성당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며, 하나님께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일은 시편(Psalms)이 하는 일 아닌가?”



캔터베리는 유럽의 다른 교회 건물들과는 다르다. 바로 그곳에서 기독교가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500년대에, 이교적 앵글로색슨 부족들이 옛 켈트 기독교 지역들을 점령한 후, 선교사들이 잉글랜드 남동부의 ‘야만인’ 켄트 왕국으로 복음을 전하러 왔다. 그들의 지도자는 역사상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Canterbury)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켄트의 왕 에텔버트를 개종시키고, 영국인을 위한 첫 교회로 캔터베리 대성당을 세웠다. 수백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 캔터베리에서 시작된 선교의 결과로 믿음에 들어왔다. 이곳은 지금도 분열된 전 세계 성공회 공동체와 잉글랜드 국교회의 ‘모교회’로 남아 있다.



새로 만들어진 “스프레이 페인트 설치물”은 성당 지하 묘소 벽에 여전히 남아 있는 중세 시대 낙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 희미한 낙서들은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형, 순교자들을 가리킨다. 한 방문객은 새 설치물이 아름다운 성당을 “지하 주차장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작년에,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트랜스젠더 성매매 활동가의 장례식이 열렸을 때, 신학자 칼 트루먼(Carl Trueman)은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 시대는 탈주술화로 특징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성모독(desecration)의 특징을 보인다. 오늘날의 문화 엘리트 계층은 이전 세대가 신성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단지 주변부로 밀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파괴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탈주술화(disenchantment)는 수동적 의미를 지니며, 둔하고, 비인격적이며, 다소 지루하지만 불가피한 과정을 뜻한다. 그러나 모독은 신성한 것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데서 오는 환희를 의미한다.”



트루먼의 이 말은 C.S. 루이스의 소설 『그 가공할 힘(That Hideous Strength)』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악한 음모 조직에 들어가려는 주인공에게 십자가상을 모독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저한다. 그러나 음모자들은,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항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요한다.



사회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근대성(modernism)의 한 특징을 “탈주술화(disenchantment)”로 설명했다. 서구 세계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서 필연적으로 초월적인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주술화라는 개념만으로는, 현대 문화가 보여 온 아름다움의 거부와 의도적인 위반에 대한 집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The God Who Is There)』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How Should We Then Live?)』에서, “기독교적 합의(Christian consensus)”의 상실이 우리의 삶을 더욱 추하게 만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를 설명하면서 쉐퍼는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의 일화를 소개했다. 베리만은 인생의 무의미함을 그린 영화를 제작하던 중,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바흐(Bach)의 곡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 작곡가의 음악에 담긴 질서, 아름다움, 초월성은 그가 의도한 혼돈의 비전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독된 시대에는 아름다움이 부정되고, 조롱되며, 희화화된다. 예를 들어, 젊은 세대가 자신의 몸을 훼손하거나 변형하거나 심지어 절단할 때, 그것은 단지 “다른 스타일”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행위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을 모독한다는 것은 곧 모독할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캔터베리의 벽에 낙서가 충격적인 이유는, 그 낙서가 그 웅장한 성당의 웅장한 벽 위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1798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명령은 이것이다. 그가 자연에 충실해야 하며, 자연을 연구하고, 모방하며, 자연의 현상을 닮은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다움이 자연 너머의 어떤 것을 가리킬 잠재력을 지닌다는 것을 안다. 아름다움은 신성한 것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찬양하는 한 방식이다. 그것은 곧, 모든 자연을 말씀으로 존재하게 하시고 그 안에 신성함을 불어넣으신 그분 자신을 가리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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