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대한 유대인의 주장
- Sang Lee
- 3 days ago
- 3 min read
이스라엘에 대한 유대인의 주장
(2025/11/13)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8QtIiVqISjc
(2) 번역 스크립트 :
수잔 아불하와는 팔레스타인 활동가이자 작가로, X(옛 트위터)에 있는 그녀의 소개란에는 “[증거가 없는 식민 정착민들과 달리, 나는 예루살렘의 토착 딸이다(증거를 갖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10월 27일, 그녀는 X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할리우드는 지금 온 힘을 다해 세뇌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우스 오브 데이비드(House of David)’라는 새 TV 시리즈가 프라임(Prime)에 나왔는데, 70년밖에 되지 않은 유대인 시오니스트 정착민 식민지가 사실 고대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기생충들이다.”
현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과 아무런 연관이나 권리가 없으며, 시오니스트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식민 점령하고 있다는 이 주장(요즘 점점 흔해지고 있는 주장)은 고고학적·역사적 증거가 고대 이스라엘의 존재를 확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기된다.
예를 들어, 로마에 있는 티투스의 개선문(Arch of Titus)은 A.D. 70년에 일어난 유대인 패배를 기념한다. 이 사건은 유대인 역사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를 포함해 여러 이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구약성경의 거의 모든 책에는 이 지역에 살던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님을 갈릴리, 유대, 예루살렘에서 살던 유대인으로 묘사한다. 앗시리아, 바빌론, 이집트에서 발견된 고대 비문들 역시 이스라엘의 존재를 증언한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12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메르넵타 석비(Merneptah Stele)이며, 이집트 상형문자로 쓰였다. 이 석비는 파라오가 이스라엘인을 이겼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B.C. 9세기에 속한 텔단 비문(Tel Dan inscription)은 북이스라엘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다윗의 집의 왕”을 기념한다. 히브리어로 된 수많은 비문도 현대 이스라엘이 고대 이스라엘의 영토 위에 세워졌음을 더욱 뒷받침한다.
기독교 시대 전반에 걸쳐, 한 시기를 제외하고 유대인들이 이 지역에 살았다는 증거도 충분하다. A.D. 135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는 유대인들의 반복된 반란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추방했다. 그러나 A.D. 638년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칼리프 우마르(Caliph Umar)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도시로 돌아오도록 허가했으며, 그들이 성전산(Temple Mount)에서 기도하도록 초대하기도 했다. 9세기 무렵에는 200~500가구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구에 살았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도시에 있던 유대인들은 학살되었고 다시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주변 마을에서 거주하는 것은 허락되었다. 1187년 살라딘(Saladin)이 예루살렘을 다시 정복했을 때는, 그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도시로 들어오도록 초대했다. 이후 중세 기간 내내 유대인의 거주는 지속되었으나, 그들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점점 더 심해졌다.
1517년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이 예루살렘을 다시 장악하면서 유대인들은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이주 물결이 이어졌고, 특히 19세기에는 유대인의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오스만 제국의 인구 조사 기록에 따르면, 1800년 예루살렘에는 약 2,000명의 유대인이 살았으며 이는 도시 인구의 약 25%였다. 1900년에는 약 35,000명으로 증가하여 전체 인구의 약 65%를 차지했다. 오스만 시대에 기록된 올리브 산(Mount of Olives)에는 약 15만 개의 유대인 묘지가 남아 있다. 오스만 통치가 1914년에 끝났을 때, 예루살렘에는 약 45,000명의 유대인이 있었다.
다시 말해, A.D. 135년부터 638년 사이의 기간을 제외하면, 성지에 광범위한 유대인 거주가 있었다는 증거는 매우 강력하다. 사실, 그 증거의 많은 부분이 무슬림 자료에서 나온다. 고대 이스라엘의 존재와 유대인의 지속적인 성지 거주,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전 수세기 동안의 유대인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반박하는 또 다른 흔한 주장은 현대 유대인들이 고대 이스라엘인들과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어떤 사람들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살았던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들이, 독립을 지키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한 투르크계 카자르(Khazar)인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전학 연구는 이 이론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유전체를 청동기 및 철기 시대 이스라엘에서 나온 유골의 유전체와 비교하면 그 사이에는 50~60%의 연속성이 있다. 나머지 30~40%는 600~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중세 시기의 혼인으로 설명된다. 즉, 카자르 시대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세파르디(Sephardic) 및 미즈라히(Mizrahi) 유대인들은 고대 이스라엘인들과의 유전적 연속성이 아슈케나지보다 더 높다.
사실은 늘 이념을 방해하는 법이며, 특히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이 그렇다.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존재, 거의 끊이지 않은 성지의 유대인 거주, 현대 유대인과 고대 이스라엘인을 연결하는 여러 증거는 모두 매우 풍부하다.
반면, 7세기 이슬람 정복 이전에 이 지역에서 아랍인들이 살았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