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인가 정부인가? 소셜 미디어의 관리 주체에 관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가르침 1. 원문 스크립트와 영어 오디오 서비스 https://www.breakpoint.org/should-the-family-or-the.../
2. 번역 스크립트 및 한국어 음성 서비스 (1) 한국어 음성 서비스: https://youtu.be/P2FYX-ofAx0 (2) 번역 스크립트 가정인가 정부인가? 소셜 미디어의 관리 주체에 관한 아브라함 카이퍼의 가르침 https://www.breakpoint.org/should-the-family-or-the.../ 가족문제연구소는 소셜 미디어의 위험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법률 및 정책상의 권고안(https://ifstudies.org/.../its-time-for-states-to-protect...)을 발표했다. 이 권고안에는 연령 확인 법률, 부모 동의 요건, 청소년 대상 심야 시간 소셜 미디어 플랫폼 사용 중지 등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부터 청소년들의 소셜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려고 시도했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프랑스는 15세 이하의 학교에서의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 (https://www.forbes.com/.../the-mobile-phone-ban-in.../...).
십대들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을 감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야 한다. 아직도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https://www.thegospelcoalition.org/.../transformation.../)에서 시작되어 급속하게 퍼져가고 있는 성별 불쾌감을 겪는 청소년 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틱톡 때문에 십대들에게 투렛증후군과 유사한 틱장애가 급증하는 현상(https://www.breakpoint.org/teens-are-developing-tiktok-tics/)만 생각해 봐도 된다.
그러나 정부가 소셜 미디어를 제한하는 마지막 방어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방어선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가정이 아이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전환기에 살았던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매우 도움이 되는 사상의 일부를 현대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카이퍼는 농담처럼 콜슨 센터의 "수호성인"으로 불렸다. 척 콜슨은 인생의 말년에, 특히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주변 문화와 교류하고 문화에 영향을 미치라는 부르심을 받았는지 이해하는데 있어 카이퍼의 생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K8B1A7oPe-8).
카이퍼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가정이라는 영역을 통해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카이퍼는 일평생 신학자로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대학을 설립하고 신문을 발행했으며 결국 수상이 되었다. 다양한 경력을 거치면서, 카이퍼는 "영역 주권"이라고 불리는 개념을 제안하고 옹호했다.
카이퍼가 이해한 것처럼 "영역”이란 사회를 유지시키는 사회적인 집단이나 영역을 뜻한다. 그는 이를 서로 맞물려 일하는 "톱니"처럼 보았다. 그는 네덜란드의 자유대학교 개교식 기념 연설(https://media.thegospelcoalition.org/.../SphereSovereignt...)에서 과학, 예술, 기업, 정부, 가족 등 각 영역에는 "고유한 삶의 법칙"과 "수장" 또는 리더십이 있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생명에 대한 주권자이시다. 그의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인간의 삶의 전 영역에서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라고 외치지 않는 부분은 조금도 없다"일 것이다. "바퀴가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대로 바퀴가 돌아가도록 만드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생명을 억압하거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각 영역에서 그 영역을 위해 자유롭게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모든 고귀한 주권 국가나 [지도자에게] 매력적인 이상이 아닌가?" 국가 원수의 의무는 "삶을 자유롭게 누리도록" 돕는 것이라는 카이퍼의 생각은, 많은 면에서 그가 우리와 비슷한 시기, 즉 사람들이 혁명을 부르짖던 시기에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이퍼는 이러한 무법적인 접근 방식을 너무 불편하게 여겨, 자신의 정당을 "반혁명당(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braham-Kuyper...)"이라 불렀다. 작가인 마이클 와겐만에 따르면, 카이퍼는 "인류는 '우리의 역사적 발전 과정은 오직 합법적인 방식의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바뀔 수 있다'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대리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작된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노골적인 혁명보다는 책임감 있는 개혁을 통해 달성된다."
만약 "조작된 유토피아"로 안내한다는 말이 낯설다면, 트위터에서 "반인종차별주의자(antiracist)"나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라. 카이퍼는 국가의 위기가 가족의 위기를 드러낸다고 믿었다.
카이퍼는 가족의 지도자는 "국가 원수"가 아니라 "가족 내 선한 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임자"로 보았다. 정부는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 때에만 개입해야 한다. 그는 "중앙 정부는 인생의 가장 작은 영역에서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는 일에만 개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가정 내 선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통제를 해야 한다면, 일시적으로만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대학 등록금을 위한 적금에 세액 공제를 주는 것처럼이, 가족의 선한 질서를 위한 제도는 장려할 수 있지만, 가정 생활을 통제하려는 세속 정부는 기독교 가정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추구하는 아이를 빼앗아 가는 것(https://breakpoint.org/how-the-church-and-the-state.../)처럼 빠르게 변질될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부모의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십대와 소셜 미디어라는 주제로 돌아가자면, 아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가족이 해야 할 일이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가정이 번영할 때 사회가 번영한다. 이것이 바로 각 영역의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사회는 가족이 도덕적인만큼만 도덕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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