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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관

  • Writer: Sang Lee
    Sang Lee
  • 1 day ago
  • 3 min read

비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관

2025/8/18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p_6cCbwHi6A


(2) 번역 스크립트 :

“이 세상에서 너희는 환난을 당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참된 말이다. 특히 지난 몇 달처럼, 그 말씀은 더욱 적절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지구의 기아 위기, 지난주 한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를 포함해 세 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오스틴의 타겟 매장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텍사스에서 시작된 참혹한 홍수로 점철된 이번 여름의 고통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우리는 미스틱 캠프에서 소녀들이 겪은 일에 대한 보도에 몸서리쳤고, 27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애도했다.


비극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신념을 드러낸다. 그것은 단지 신념이 무엇인지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신념이 “충분히 큰가”를 시험한다. 회의론자들은 흔히 악과 고통의 문제가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모든 종교와 세계관은 세상이 왜 이런지를 설명해야 한다.


자연주의적 현실 해석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세상은 순전히 물질적 원인과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이 없고, 단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따라서 텍사스의 소녀들에게 일어난 일이 ‘악’이 아니라 단순히 불운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교나 힌두교 같은 동양 종교들, 그리고 기본적으로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뉴에이지 사상은 실재하는 악의 존재를 부정한다. 물질 세계가 환상이라면, 물질 세계를 해치는 악도 환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회피이다.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 대신, “왜 나쁜 일이라는 환상이 일어나는가?”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의 관점과 경험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결코 실재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악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포스트모던의 관점주의에서 파생된 최근의 산물인 비판이론은 악을 억압으로 환원하고 특정 집단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그 설명은 자연재해나 억압받는 집단 내부에서 발생한 악행을 설명하지 못한다.



악의 존재를 설명하고 동시에 나아갈 길을 제시할 만큼 충분히 큰 유일한 세계관은 기독교이다. 성경은 인간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세상에 선을 가져올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악과 고통을 세상에 불러올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아름다움과 진리와 선으로 충만하지만, 우리의 죄는 이 세상을 깊고도 심각하게 깨어지게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자주 우리의 통제를 훨씬 넘어서는 해로운 힘의 희생자가 되곤 한다.



세상과 인간 안의 악을, 그것이 흔하게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악으로 인식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주의 의미와 우리가 어떻게 지음받았는지를 암시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심각한 악 속에서도 나타나는 영웅적 행위와 희생을 진실로 선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것 또한 의미가 있다.



텍사스 홍수 때, 26세의 해안경비대 구조 잠수사 스콧 루스칸은 그의 첫 임무에 투입되었다. 현장에 있던 유일한 구조자로서 그는 미스틱 캠프의 아이들과 지도자 165명을 구해냈다. 심지어 그가 구한 소녀들이 부탁하자 몇몇 인형들까지 함께 구해주었다. 에릭 에릭슨이 말했듯이, “ 이 남자가 미국에서 어떤 술집에서든 술값을 내는 것은 평생 거절당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공짜로 마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이론의 틀 속에서는 그러한 남성적 영웅주의가 “유해”하고 억압적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초월주의적 세계관이 주장하듯 물질 세계가 환상이라면, 소녀들의 고통도 루스칸의 영웅적 행위도 단지 환상일 뿐이다. 만약 생명이 신다윈주의적 ‘적자생존’의 이야기대로 진화했다면, 루스칸이 한 일에는 어떠한 명예도 없고 그날 밤 목숨을 잃은 생명에도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끔찍한 비극을 진정 끔찍한 것으로 본다. 악과 고통 앞에서 우는 것도, 심지어 분노하는 것도 옳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지 않는다. 악이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은 그것을 대면하고,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들을 보호하시며,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시기 위해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왜 특정한 악이 발생하는지는 늘 의문으로 남겠지만, 선으로 악을 이기려는 우리의 노력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실 만큼 사랑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이다. 감지네 샘와이즈가 말했듯이, “세상에는 선이 있고, 그것은 싸울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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