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는 계획이 아니었다
- Sang Lee
- Dec 14, 2025
- 3 min read
가타카는 계획이 아니었다
(2025/9/18)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pn7V95wsGcg
(2) 번역 스크립트 :
최근 <Interesting Times> 팟캐스트에 출연한 체외수정(IVF) 배아 선별 회사 ‘오키드(Orchid)’의 대표 누르 시디키는 로스 다우댓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기를 만드는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배아의 유전자 선별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그것이 출산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으로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건강을 운에 맡기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최대한 신경 쓰고, 최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볼 거죠. 아기방을 꾸미고, 집을 계획하고, 유치원을 고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 결국 ‘돌봄’의 문제인 거에요. 내 가족을 위해 어떻게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라고요.”
시디키의 말은 아마 맞을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삶을 꾸미는 하나의 ‘부속품’처럼 여겨진다면, 우생학적 접근은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우리가 집으로 데려올 아이의 건강을 최적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쓰지 않겠는가? 설령 그 과정에서 다른 작은 인간들을 만들어서 버려 버리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왜 사용하지 않겠는가?
체외수정은 원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가 부모가 되도록 돕는 ‘치료 기술’로 홍보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특정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팔리고 있다. 임신을 늦추거나, 대리모에게 임신을 맡기려는 사람들도 원하는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식이다.
사실 체외수정은 처음부터 성관계와 출산을 분리해 왔다. 그리고 언제나 배아의 선별과 선택을 포함했다. 시디키가 말하는 것은 단지 그 연장선일 뿐이다. 그녀는 여러 차례 이렇게 말했다.
“성관계는 즐기기 위한 것이고, 체외수정이 아이를 갖기 위한 겁니다.”
그녀는 더 철저하게 검사하고 더 잘 선별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믿는다. 아마 그 말도 맞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1997년 영화 『가타카(Gattaca)』가 소름끼치게 예언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영화 속 사회는 유전적 완벽함을 추구하는데 과하게 집착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유전학에 흥미를 가지지만, 그것을 주로 원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오키드의 서비스가 완벽해지고 보편화된다면, ‘옛날 방식’으로 아기를 낳는 부모는 “무모하다”거나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아이를 선별하지 않은 부모는 학대적이고 냉정하다는 낙인을 찍힐 수도 있다. 보험회사가 어떤 임신은 비용을 보장하면서 다른 임신은 보장하지 않는 세상도 상상할 수 있다.
의사인 크리스틴 콜리어 박사는 오키드의 웹사이트를 본 후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의료’ 행위가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이는 이미 매우 미끄러운 경사길을 정상화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최근 라이브액션(LiveAction)의 라일라 로즈는 한 남성이 남성 파트너와 부모가 되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공유했다. 그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는 아기를 둘 갖는다. 우리는 난자 기증자로부터 냉동 난자 40개를 샀다.”
그는 이후 포스트잇으로 표시된 난자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유전적 ‘문제가 있는’ 난자들을 버리고, 마지막에 단 두 개만 남겼다. 오키드의 기술은 바로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단지 작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화면을 넘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샤 엘린슨은 이를 “실리콘밸리의 더 똑똑한 아기에 대한 집착”이라고 묘사했다.
이른바 ‘유전적 최적화’에 대한 매력은 실리콘밸리의 깊은 신념을 반영한다. 하버드 의대의 통계유전학자 사샤 구세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자신이 똑똑하고 성공했으며, ‘좋은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들이 같은 일을 자기 아이들에게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최근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P. 조지 교수는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우생학은 이제 영구적인 유혹이다. 매 세대가 그것을 마주할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힘들지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상품’이 아니라 ‘인격체’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을 ‘품질 관리’의 대상, 제조된 물건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윤리적인 ‘램프의 요정’은 병 속에서 나와 버렸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우생학에 반대해야 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아이들의 본질적 선함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100년 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녀와 노인을 죽이지 않는 사람들로 불린다면,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가 아이를 낳는 방식에서도 그렇게 알려진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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