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집단주의”라는 맘다니의 환상
- Sang Lee
- 4 days ago
- 3 min read
“따뜻한 집단주의”라는 맘다니의 환상
2026/1/9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D. 패젯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XjytRIDdB0E
(2) 번역 스크립트 :
새해 첫날에 행해진 취임 연설에서 조란 맘다니는 “거친 개인주의의 냉혹함을 집단주의의 따뜻함으로 대체하겠다”고 약속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이 인용문을 나치, 스탈린주의, 마오쩌둥주의가 펼친 “따뜻한 집단주의”의 희생자들의 이미지와 함께 엮은 밈들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맘다니의 친근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택한 표현은 의도적이었다. 혁명가들과 상아탑 지식인들의 언어를 되풀이하면서,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는지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또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없이 통치할 것이며,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사과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민주사회주의자로 선출되었고, 민주사회주의자로서 통치할 것이다. 급진적이라는 평가가 두렵다고 내 원칙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실제로 급진적이다. 사실 앨 몰러가 『월드(World)』에서 말했듯이, 그것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악몽에서 그대로 나온 것들”이며, 우리는 이 악몽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이미 알고 있다. 몰러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그의 사상들이) 시도된 적이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채택된 모든 곳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을 낳았다는 데 있다.”
맘다니는 자기 사상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거나 둘중 하나이다. 11월 4일 선거에서 승리한 후 맘다니는 이렇게 선언했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할 만큼 큰 문제도 없고, 정부가 관심을 두지 않을 만큼 작은 걱정도 없다.” 이 발언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한때 “영어에서 가장 무서운 아홉 단어”라고 불렀던 말을 많은 사람들에게 떠올리게 했다. “나는 정부에서 나왔소. 그런데 당신을 도우러 온 거란 말이요.(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
사실 맘다니는 또 다른 정치인과 매우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국가 안에 모든 게 있고, 국가 밖엔 아무것도 없고, 국가에 반대되는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이 말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한 것이다. 한때라면 미국 정치인이 파시스트 독재자의 말을 사실상 인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지만, 많은 젊은 미국인들은 과거의 실패한 사상들을 다시 생각해 볼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유거브(YouGov)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 미국인의 거의 절반이 사회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이 연령층은 맘다니에게 압도적으로 투표했다.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세대의 많은 이들이 단순히 더 나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교육은 실패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악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사회주의 체제에서 탈출하려다 죽은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나 왜 탈출이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이루어졌는지는 듣지 못했다. 그들은 기후 변화라는 임박한 재앙을 두려워하도록 배웠는데, 그것은 악한 기업들의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산업과 농업을 통제하면서 발생한 대규모 기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나눔에 관한 것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그 나눔이 종종 총구 앞에서 강요된다는 사실은 배우지 못했다. 사회주의가 실패하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며, 진정한 사회주의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고 배웠다.
사회주의에 대한 진실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이라는 점이다. 벤 샤피로가 몇 년 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회주의는 나쁘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폭정이기 때문이다. 폭정의 한 측면이 아니라, 사회주의 그 자체가 폭정이다. … 사회주의의 개념은, 당신에겐 당신의 자유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주의가 시도될 때마다 억압이 뒤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체제 속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폭정은 사회주의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특징이다.
이는 사회주의적 비전에 따르면 사회의 모든 요소가 국가에 복종하거나, 제거되거나, 혹은 “더 나아가” 국가의 또 다른 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미국의 자유와 번영의 원동력으로 옳게 지적했던 교회, 학교, 자원봉사 단체, 가족과 같은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조직들의 역할은 사회주의 아래에서 정부 권력의 부서로 넘겨줘야 한다. 국가는 실패할 수 없다.
그러나 국가는 실패한다. 그것은 단지 비효율성 때문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는 결함 있는 인간관 위에 세워져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인민”을 위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인류’를 위한 것이지 실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적 비전에 따르면 개인은 사회로부터 존엄성을 부여받으며, 다른 방식은 아니다. 고유한 통찰력과 관점과 선호를 가진 개인은 거대한 사회주의 프로젝트에 있어 실존적인 위협이 된다.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서, 존엄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 개인에게 주어졌다. 개인들은 그 존엄을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에 가져다준다. 그들은 정부가 후원하는 톱니바퀴 속의 부품이 아니며,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아니다. 그들은 J. R. R. 톨킨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의 능력을 지닌 주체’이며, 자유와 기회가 주어질 때 그들을 통제하려는 어떤 거대한 체계보다도 더 뛰어난 성과를 낼 것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