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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도나투스파와 용서

  • Writer: Sang Lee
    Sang Lee
  • 1 day ago
  • 3 min read

말콤 글래드웰, 도나투스파와 용서

2025/9/29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2WcVSTc2Eo4


(2) 번역 스크립트 :

문화적 논쟁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이자 팟캐스터인 맬컴 글래드웰은 최근 바로 그렇게 했다. 그는 The Real Science of Sport Podcast〉에서, 2022년에 한 패널을 진행할 때 남성이 여성 스포츠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라는 압력을 받아 침묵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시에도 남성이 여성보다 스포츠에서 우위가 없다는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당시 청중의 90%는 그 진실을 알고 있었으나, 용기를 내어 말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그는 사회적 압력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만약 똑같은 패널을 다시 한다면…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것이다. 방 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트랜스 선수는 여성 부문에 속할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내가 그 패널에서 부끄러운 이유는 당신과 똑같은 입장을 100%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겁먹고… 정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많은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그냥 지나치게 두었다.”



그는 패널에 앉아 있던 한 트랜스 옹호자가 “우리가 이기도록 허락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대화의 본질을 깨달았다고 한다.



“트랜스 운동은 단지 그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존중과 존엄으로 대우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스포츠에서 그들이 가지고 오는 뚜렷한 생리적 이점을 누구도 의문시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건 말도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래드웰의 고백은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에 관한 ‘분위기 변화’의 최신 사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명성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겁을 먹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압력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침묵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프란시스 쉐퍼의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사람들은 종종 감기에 걸리듯이 생각을 받아들인다. 트랜스 이데올로기에서 반유대주의까지, 악이 퍼지는 주요한 방식 가운데 하나는 사려 깊고 지적인 사람들이 입을 다물 때다.



글래드웰이 이 문제에서 입장을 바꾸는 마지막 저명 인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잘못을 인정할 때 우리 나머지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 질문은 유명 인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친구, 가족, 심지어 신앙을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된다.



비슷한 질문은 311년 (로마의 기독교) “대박해(大迫害)”가 끝난 뒤 초대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였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 속에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한 교회 지도자들과 마주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도나투스 논쟁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어떤 이들은 자비와 용서를 주장했고, 또 다른 이들은 배교한 지도자는 일정한 기간과 회개의 행위를 거친 뒤에만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 부인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바로 도나투스파였다. 이 논쟁은 교회의 첫 번째 대규모 분열 중 하나로 이어졌다. 결국 교회는 죄를 덮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메시지를 우선하기 위해 자비를 택했다.



물론, 이단적인 견해를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유명인의 경우와는 다르다. 그러나 비판이론적 분위기에 사로잡히고 소셜 미디어의 “딱 걸리는(‘gotcha’) 순간”을 추구하는 문화에는 자비나 용서라는 범주가 없다. 오직 기독교만이 용서를 위한 틀을 제공한다. 학살당한 아미시 학교 소녀들의 어머니들, 찰스턴의 마더 에마누엘 교회의 성도들, 남편(찰리 커크)의 장례식에서 발언한 에리카 커크에 이르기까지, 용서는 교회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방식 가운데 하나였다.



용서가 어리석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강한 책임 추궁과 용서의 영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공적인 잘못은 공적 책망, 직분 박탈, 심지어는 적절한 권위에 넘기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과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으며, 피해자가 다시 위험에 처하도록 허락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와 용서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의 중심 특징일 뿐 아니라 기독교적 현실 이해의 중심 요소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자비와 용서를, 굳건하고 흔들림 없이 죄를 반대하시면서 동시에 붙잡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교회는 배신자 베드로, 열혈당원 시몬, 착취하던 (세리) 마태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다. 우리의 역사는 죄인이면서도 용서받은 자들의 역사이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의 저자가 고백한 대로 “나는 큰 죄인이고… 그리스도는 위대한 구주이시다”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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