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로 본 지난 10년
- Sang Lee
- Apr 26
- 3 min read
‘올해의 단어’로 본 지난 10년
2025/12/8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OvmzUs0g2Vk
(2) 번역 스크립트 :
2004년 이래 매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Oxford University Press)는 영어권 전반의 뉴스 사용례를 바탕으로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선정해 왔다. 유명 강사이자 저자인 압두 머레이(Abdu Murray)는 단어가 어떻게 문화를 반영하고 설명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는 단순한 언어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그것은 문화적 MRI이며,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며, 무엇에 집착하는지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2016년부터 2025년까지의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이른바 ‘현실 붕괴’라 불리는 10년에 걸친 서사가 드러난다. 이는 알고리즘, 분노를 증폭시키는 시스템, 개인적 선호라는 강력한 중력을 활용하지 않고 세계를 직접 인식하는 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흐름은 2016년 올해의 단어였던 ‘탈진리(post-truth)’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감정이 사실보다 더 큰 무게를 갖기 시작한 순간을 포착한 말이다. 탈진리는 단순히 부정확한 사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신적인 자율성에 대한 선언이었다. 진리가 내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이라면, 현실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된다. 여기서부터 바로 비현실적인 것을 선별하는 쪽으로 문화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에는 ‘유스퀘이크(youthquake) (청년발 지각변동)’이 등장했다. 이는 젊은 세대의 급격한 부상이 사회·정치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말이었다. 그것은 행동주의를 통해 사회를 재편할 수 있다고 확신하던 이들의 에너지를 포착했다. 그러나 탈진리와 유스퀘이크를 실제로 체험하고 실현하려고 했던 그 젊은이들은 이제 거의 10년이 지난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현실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세태를 남겼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올해의 단어’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뒤를 잇는 세대가 사용한 말들이었으며, 밀레니얼 세대가 구축한 생태계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2022년의 올해의 단어는 ‘고블린 모드(goblin mode)’(자기 방임적 생활태도)였다. 이는 게으름을 끌어안는 문화, 절제와 야망으로부터의 후퇴를 나타냈는데, 유스퀘이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2023년에는 ‘리즈(rizz)’(이성을 끌어당기는 사회적·연애적 매력)이 등장했는데, 이는 수행적으로 연출되는 카리스마, 곧 알고리즘적 청중을 위해 만들어진 정체성의 과시적 특성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2024년의 ‘브레인 롯(brain rot)’(뇌 썩음 현상)은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의심해 오던 사실을 고백했다. 끝없는 스크롤, 도파민을 미끼로 삼는 피드, 디지털적 수동성이 젊은이들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스퀘이크가 약속했던 에너지는 전자 기기가 인지를 형성하고, 주의력을 분절시키며, 정신적 회복력을 잠식하는 현실로 바뀌어 버렸다.
2025년에 이르러서는 현실 붕괴의 언어가 더욱 정밀해졌다. 2025년의 단어 ‘레이지 베이트(rage bait)’(분노 유발 미끼 콘텐츠)는 분노를 자극하여 사람들을 자기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묶어 두고, 온라인에 계속 머물게 함으로써 그것을 확산시키는 콘텐츠를 뜻한다. 과장이나 노골적인 거짓은 세계가 영원히 전쟁 상태에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며, 다른 의견은 광기로, 세밀한 차이는 배신으로 보도록 길들인다. 올해의 준우승 단어인 ‘아우라 파밍(aura farming)’(온라인 자기 이미지 관리 문화)은 좀 더 미묘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만연한 현상을 반영한다. 젊은이들은 온라인에서 선별된 자기 이미지를, 즉 유지하고 다듬고 제시해야 할 ‘아우라’를 기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파밍’이라는 표현은 정확하다. 그 이미지는 뿌려지고, 가꾸어지고, 수확되어야 한다. 이는 진정성이 아니라 좋아요, 공유, 댓글로 측정되는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압박이다.
레이즈 베이트는 외적으로는 인식을 납치하고, 아우라 파밍은 내적으로 자아를 노예로 만든다. 하나는 세계를 왜곡하고, 다른 하나는 정체성을 왜곡한다. 이 두 경우 모두 젊은이들은 마치 자신의 가치와 현실이 전적으로 수행, 도발, 선별 능력에 달려 있는 것처럼, 끊임없는 구축과 반응의 상태 속에서 살도록 강요받는다.
기독교는 이에 대한 해방적인 반(反)서사를 제시하며, 이것이 최근 성경 판매와 다운로드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성경은 우리의 정체성이 끝없이 만들어 내야 할 것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부여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그 안에는 본래 존엄성, 창조성,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주신 형상은 우리가 선별된 존재감, 분노에 대한 반응, 주의력을 상품화하는 경제에 의해 규정되는 폭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분에 의해 규정된다. 우리는 다시금 ‘발견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 틀 안에서 진리는 주관적 감정이나 스스로 빚어낸 투사가 아니다. 진리는 인격이다. 예수님은 현실을 붙드시는 궁극적 닻이다. 변하지 않으며, 자비롭고, 권위를 지니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감정을 실제 존재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이끄심으로써 감정을 인정하신다. 그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그는 브레인 롯, 아우라 파밍, 레이지 베이트가 가하는 인지적·정서적 조건화에 저항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신다.
지난 10년간의 ‘올해의 단어’는 우리가 진리를 감정으로 더듬어 가려 할 때 현실이 붕괴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알고리즘, 분노, 선별된 자기 과시가 현실을 정의하도록 할 때, 분노와 수동성, 왜곡 속으로 분열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현실에 자신을 고정시킬 때, 우리는 사려 깊은 참여, 창조성, 하나님과 그 형상을 공유하는 이웃과의 참된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그 현실에 단단히 닻을 내릴 때, 우리는 분명하게 보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성실하게 행동할 자유를 얻는다. 우리는 길들여야 하는 뇌 덩어리가 아니라, 붕괴에 맞서라는 소명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우리를 붙드는 유일한 진리 안에서 굳게 서 있다."
압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오늘의 브레이크포인트 논평은 압두 머레이의 신간 『Fake ID: How AI and Identity Ideology are Collapsing Reality – And What to Do About It』(가제:「가짜 신분증: AI와 정체성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실을 붕괴시키는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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