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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술의 목적

  • Writer: Sang Lee
    Sang Lee
  • Dec 6
  • 3 min read

우리 기술의 목적

2025/8/25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D.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4r889PazVko


(2) 번역 스크립트 :

뉴럴링크의 새로운 기술 덕분에 20년 넘게 전신이 마비되었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링크(Link)’라 불리는 25센트 동전 크기의 칩이 그녀의 뇌에 외과적으로 이식되자, 오드리 크루스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뉴럴링크를 설립한 일론 머스크에 따르면, 마비 환자들을 돕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언젠가 맹인이 시력을 회복하고, 말을 못하는 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안고 있는 도전이 드러난다. 특히 의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약속되는 것들은 놀라울 뿐 아니라 거의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그 약속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미 의학 기술의 발전은 과거 흔하던 전염병과 질환들을 근절시켰다. 1950년대만 해도 소아마비 환자가 수만 명에 달했다. 오늘날 소아마비는 사실상 사라졌다. 1981년 이전에는 태아를 위한 의료적 조치를 거의 취할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자궁 안에서 아기에게 정식 수술을 시행할 수 있고, 다른 기술들은 과거 같으면 거의 틀림없이 죽었을 신생아들을 살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들과 함께 큰 위험도 따른다. 우리는 CRISPR 같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과 같은 인공 생식 기술, 심지어 스마트폰조차 무심하게 바라볼 수 없다. 기술이 윤리를 앞질러 버리면, “할 수 있는 것”이 곧 “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새롭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자동으로 “좋은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한때 특히 부지런한 한 무리의 자기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그들이 한 민족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창세기 11:6). 이는 동시에 경고이자 평가였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선을 위하여, 혹은 악을 위하여(때로는 둘 다를 위하여) 혁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윤리는 기능 확장/증강(augmentation)과 회복(restoration)을 구분해야 한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실 때는 회복의 차원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님은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시지 않으셨다. 맹인에게는 시력을 되돌려주셨지 엑스레이같은 시력을 주지 않으셨다. 절름발이에게는 다리를 고쳐주셨지 날개를 달아주지 않으셨다.



오드리 크루스에게 일어난 일은 회복이었다. 신경 임플란트가 잃어버린 능력을 회복시킨 것이다. 증강이라면, 누군가의 호기심만으로 두뇌에 책을 다운로드하거나 구글 검색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신경 임플란트일 것이다.



신경 제어 외골격은 절름발이가 걷도록 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올림픽 역도에서 압도적인 지배력을 가지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힘은 군인이나 재난 구조 요원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모든 기술은 윤리적이다. 특히 그것이 우리의 몸에 영향을 미칠 때는 더욱 그렇다. 도덕 신학자 크리스천 브루거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주신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를 넘어서면 인간은 번영하지 못한다. 그 한계 중 하나는 우리의 육체적 본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그 본성을 웅장한 초인적 실체로 변형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기독교 과학자들은 트랜스휴머니즘의 명령 속에서 원죄의 속삭임, 곧 교만을 듣는다. ‘그것을 행하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그것이 최초의 유혹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창조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닮는 것과 ‘하나님 행세를 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우리의 행위와 의도를 나타낼 때, 우리는 창조의 나머지를 그분께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인 양 행동하는 것은 그분을 닮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창조하지만 무(無)에서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돌보지만, 그것은 여전히 그분의 소유이다. 우리의 자리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착각한 데서 많은 비극이 비롯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동산을 돌보고, 그분의 땅을 다스리며, 그분의 창조적 일을 계속하여 그분의 창조 세계를 형성하고 채우도록 지음 받았다.



T.S. 엘리엇이 한때 교육에 대하여 말한 바는 기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것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결정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길버트 마일랜더는 그의 저서 『기독교인을 위한 생명윤리 입문』에서 생명윤리에서 목적과 의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마일랜더는 우리가 기술이 약속하는 자유에 가장 크게 유혹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유, 곧 우리의 선택을 궁극적으로 하찮게 만들지 않는 자유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처럼 되려 하지 않는 자유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자유는 우리의 본성의 이중성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한계를 인정하는 자유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가장 자유로운 것은 마음에 떠오르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지음 받았을 때의 목적을 따라 무언가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있을 때가 가장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우리의 기술이 우리의 창조 목적을 섬길 때만 그것은 선하고 회복적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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