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서구 확산
- Sang Lee
- Mar 2
- 3 min read
이슬람의 서구 확산
(2025/11/6)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t731o5lVdTM
(2) 번역 스크립트 :
9·11 테러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약 3,000명을 살해한 지 25년도 채 되지 않아, 바로 그 “그라운드 제로”가 있는 뉴욕시가 무슬림 시장을 선출했다. 이미 일부 유럽 도시는 무슬림이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미국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오늘 브레이크포인트에서는 강사이자 저자인 압두 머레이가 미국 내 이슬람의 현황과 그리스도인의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진실은 언제나처럼 복잡하다. 서구 사회에서 커져가는 이슬람의 영향력에 대한 합당한 우려가 있는 반면, 과장되거나 완전히 허위인 주장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시간주 디어번이 기독교 선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나는 직접 그 조례를 읽어보았고, 그곳에 사는 기독교인 친구들에게 확인한 결과, 여전히 공원과 거리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은 실제로 존재한다. 디어번의 시장 압둘라 하무드가 거리 설교자이자 기독교인 시민인 테드 바람에게 디어번에 오지 말라고 말했을 때, 즉각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하무드는 “모든 종교인을 환영한다”는 일종의 ‘사과 같지 않은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바람에게 직접 사과하지도, 문제를 언급하지도 않았다. 인구의 약 55%가 무슬림인 도시에서 그는 정치적 지지층을 잃을 걱정이 없다.
이 상황은 흥미롭고, 동시에 교훈적이다. 이슬람의 서구 확산은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며, 지역 문화와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일부의 두려움과 달리, 샤리아 법이 서구 법체계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이슬람의 확산은 법적·강압적인 형태가 아니라, 문화적·인구학적·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극단주의나 여성 억압, 권위주의 정권 등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미국 내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민과 출산율 때문이지만, 세속주의가 제공하지 못하는 명확한 메시지와 소속감을 이슬람이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이슬람은 남성성을 독성으로 보지 않고 미덕으로 제시한다. 규율과 책임, 정체성을 강조하는 종교로서, 남성의 강함을 조롱하고 도덕적 엄격함을 피하는 문화 속에서 이슬람의 신념은 용기처럼 보인다.
또한 이슬람은 약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서구의 인식 속에서 이슬람은 세속주의 혹은 서구 제국주의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그려진다. 엘리트들에게 비난받는 소수 종교라는 점에서 억압받는 자를 지지하도록 훈련된 젊은 세대의 정서에 호소한다. 심지어 하마스가 자신들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일부 서구 청년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많은 교회는 나약해졌다. 우리는 설득력 있는 복음 선포를 감정적 호소로 대체했고, 진리를 진정성으로 바꾸었다. 그 빈자리를 이슬람의 단호함이 메우고 있다.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까지 포괄하는 세계관이다. 많은 무슬림은 세상이 알라의 법 아래 복종하기를 꿈꾼다. 그 실현 방식은 다양하다. 대부분은 설득, 봉사, 모범적 삶을 강조하지만, 인구 증가나 이민을 전략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 소수이지만 우려스러운 부류는 종교적 다원주의 자체를 거부하며, 이슬람의 전 세계적 지배를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심지어 세속주의자들도 이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 몇 년 전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기독교의 쇠퇴가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가 어떤 더 나쁜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놀라운 고백이다. 이 말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진지한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 단지 영적으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도덕적 기반을 지키는 데에도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현실이 적대감이나 공포심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순진함도 용납되지 않는다. 서구 주요 도시의 무슬림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비판을 잠재우거나 복음 전파를 제한하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 디어번의 사례는 민주사회에서도 자기검열의 압력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두려움이 정의와 진리를 압도할 때, 피해자가 생기고 불의가 만연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도덕적 명료함은 문화적 민감성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무슬림이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은 의미와 신념, 공동체를 갈망하는 마음을 얻고 있다. 그 마음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이다. 비극은 이슬람의 전진이 아니라 교회의 후퇴에 있다. 이슬람의 성장은 그 종교가 진실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신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진지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깨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대응은 경계심이 아니라 긴박함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신념, 용기, 사명감—를 인식하고, 그 동일한 덕목들을 그리스도의 진리로 새롭게 불태워야 한다.
우리의 증언은 설득력 있고 인격적이어야 한다. 무슬림과 세속적 구도자들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지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 확고하며, 자비로 실천되는 믿음을 보아야 한다. 복음은 지배가 아니라 구원을, 통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무슬림 이웃을 피하지 말고, 그들과 대화하자. 무슬림 공동체에서 사역하는 이들을 지원하자. 진리를 겸손과 확신으로 살아내는 제자들을 세우자.
서구에서의 이슬람의 부상은 공포의 이유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이유이다. 무슬림 이웃은 적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다.
이번 브레이크포인트 기사는 압두 머레이와 공동으로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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