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이 궁극의 피임약일까?
- Sang Lee
- Jul 22
- 3 min read
틱톡이 궁극의 피임약일까?
(2025/5/13) - 존 스톤스트리트/셰인 모리스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yz7suWM103E
(2) 번역 스크립트 :
TV가 발명되기 백 년 전, 덴마크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사람이 기발한 기계를 하나 발명했다고 하자. 그건 바로, 온 나라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는, 편리한 작은 말하는 튜브였다... 경찰이 이를 금지하지는 않을지 궁금하다. 이 기계가 사용된다면, 나라 전체가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것을 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예언처럼 했던 말은 일간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뉴스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순간적인 사건들의 중요성을 부풀리는 현상을 경고한 것이다. 만약 키에르케고르가 이후 등장한 TV, 그야말로 “튜브”라 불리던 저녁 뉴스 방송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닐 포스트먼은 TV가 우리 모두를 멍청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결국 키에르케고르의 악몽을 실현시킨 것은 스마트폰과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었다. 이 ‘궁극의 말하는 튜브’는 항상 우리 손에 들려 있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었다. 소셜미디어 사용과 우울증, 불안, 기타 정신 건강 문제 사이의 연관성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키에르케고르가 예견했던 모든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사용자가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도록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밝혀졌다. 최근 핀란드의 사회학자 안나 로트키르히는 <베를린 리뷰>에 ‘틱톡으로 박살난 출산율(The TikTok Baby Bust)’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 글에서 그녀는 틱톡 앱의 등장과 함께 “출산을 반대하는 가치와 밈”이 증가하고, 특히 소녀들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사회성이 저하되었다고 설명했다. 틱톡 사용자들은 “아이를 갖는 것 외에 다른 흥미로운 일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고 했다.
틱톡은 자녀를 갖지 않는 삶이 부모가 되는 삶보다 더 만족스럽다고 묘사함으로써 출산 의지를 꺾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결혼 생활보다 독신이 더 만족스럽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스마트폰, 플랫폼, 그리고 그 위에 전파되는 메시지의 조합은, 사회학자 브래드 윌콕스가 언급했듯이 “궁극의 피임약” 역할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인플루언서들이 “결혼하거나 아이를 가지지 마, 인생 망쳐”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플랫폼은 특정 메시지들을 보상하며, 사용자들은 반복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인생은 자기 표현과 공개적인 퍼포먼스를 위해 존재한다,” “무조건 예뻐야 한다,” “성은 오직 쾌락을 위한 것이다,” “너의 출산력은 행복을 방해한다,” “지구에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종종 부모나 교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한 수상한 노인이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귀에 끔찍한 말을 속삭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바로 그것이 틱톡이 하는 짓이다. 플랫폼에 흔한 메시지 자체도 이미 해로웠고, 그 미디어의 형식은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했다.
『현명한 문화 활용 가이드』에서 브렛 쿤클과 나는 문화에서 ‘인공물’의 중요성을 논했다. 어떤 아이디어가 문화를 변화시키려면, 반드시 그 메시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구체적인 도구가 필요했다. 예컨대, 인쇄기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피임약과 포르노가 없었다면 성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오늘날의 출산기피주의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가능해졌다.
틱톡과 같은 플랫폼은 인간이 스스로를 매우 ‘비신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질투와 중독을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었다. 끊임없이 스크린을 보게 만드는 구조는 사용자가 실제 인간관계보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낯선 이들의 의견, 경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이른바 ‘인플루언서’는 우상처럼 떠받들어졌고, 나쁜 생각을 퍼뜨릴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모방하는 팔로워에게 “당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보상을 약속했다. 그러니 밀레니얼 세대 절반 이상이 “최고의 목표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라 답한 것도 놀랍지 않았다.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책 『불안 세대: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에서 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없애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제한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혹은 수업 중에 소셜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틱톡으로 박살난 출산률만큼 깊은 문화적 전환은 우리 모두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
키에르케고르가 스마트폰을 보았다면, 분명히 경고했을 것이다. 그는 인간이 단지 ‘지능적인 머리’가 아니라, 습관과 육체, 관계의 존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철학자였다. 즉,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는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가족이 왜 중요한지, 아이가 왜 하나님의 선물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면,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 생각의 전쟁에서, 우리 손에 쥐고 있는 이 ‘편리한 작은 말하는 튜브’가 젊은 세대의 정신을 교란시키는 도구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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