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성의 선함과 영광
- Sang Lee
- Dec 14, 2025
- 3 min read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성의 선함과 영광
(2025/9/19)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D.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zy29ecq7m98
(2) 번역 스크립트 :
영국에서 열리던 "여성 행진(Women’s March U.K.)"은 이제 이름을 바꿔서 “교차성의 봉기(Intersectional Uprising)”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 자체에 큰 아이러니가 있다. 그들의 웹사이트에는 “여성에 대한 전쟁을 끝내라”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바로 옆에는 “여성 행진은 더 이상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즉,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운동이 정작 “여성”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새 영화 <트루스라이징(Truth Rising)>에서 풍자 매체 <The Babylon Bee>의 세스 딜런은 “어떤 기사 제목들은 코미디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일도 그 사안의 무게가 크지 않았다면 웃긴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문화 상황에서는, 여성 권리 운동이 오히려 여성 자체를 지우게 되는 건 결국 그 운동이 가진 사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2020년, 조셉 백홈은 워싱턴 D.C.에서 열린 "여성행진" 시위대에게 “여성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대답은 거의 풍자 수준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 질문 자체에 화를 냈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 자기 답을 듣고 불쾌해할까 봐 두려워하며 주위를 살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 “여성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여성이다”라는 위험한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몇 주 뒤, "생명 옹호 행진(March for Life)"에 참가한 10대들은 이 질문에 훨씬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사실 누구나 여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조차 그렇다. 그래서 성별을 급진적으로 해석하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편견이 심한 사람”이라고 일컬어 이들에게 수모를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성을 보호하려고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여성을 지우는 결과가 된 것이다.
초기 여성운동가들, 예컨대 수전 B. 앤서니 같은 이들은 여성이 여성으로서 보호받고 권리를 얻도록 싸웠다. 그런데 제2세대 여성운동(페미니즘)이 성혁명과 결합하면서, 그 운동은 점점 “여성을 또 다른 종류의 남자처럼 만드는 것”에 가까워졌다. 특히 낙태권에 집중할 때가 그랬다. 알렉산드라 드 상티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운동가들이 낙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남성의 몸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보고 남성성을 인간의 최고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후였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평등이란 남성들과 똑같아지는 것이라고 새로이 정의했고, 여성은 경제, 성, 삶 전체에서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평등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여성의 몸이었다.”
좌파적 사상에는 종종 현실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요소가 있다. 정창(Jung Chang)의 책 <와일드 스완: 중국의 세 딸들> 공산주의 치하에서 한 가족이 겪은 비극을 기록했다. 그 책에 따르면, 공산주의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이 모양 없는 옷을 입었고, 혁명가들은 남자처럼 보이고 행동하는 여성을 “해방된 여성”이라고 칭찬했다.
애비게일 파발레의 책 <젠더의 기원: 기독교적 이론>도 비슷한 점을 지적한다. 그녀는 무신론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영향을 받은 현대 성별 이론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자유는 종종 여성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율성’은 남성을 기준으로 생각되고, 여성은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화학적·외과적 방법을 사용하도록 요구받는다. 여성은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오직 무엇을 하느냐로만 가치가 매겨진다.”
이것은 트랜스젠더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어떤 남성들은 단순히 여성의 외형적 고정관념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 자신이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트랜스젠더 운동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자기 정체성을 거부하도록 만들었고, “젠더-확정 치료”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수술과 약물 치료는 수많은 여성에게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트랜스 커뮤니티 안에서는 경쟁심, 공격성 같은 전형적인 남성적 특성은 높이 평가되지만, 양육적 특성은 무시된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 운동은 여성에 대한 전쟁이다.
한편, 미국 화가 메리 커샛은 여성들을 여성으로 그렸다. 그녀는 여성을 남성의 쾌락을 위한 대상으로 보지도 않았고,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도 그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린 여성들은 존엄한 인격체였으며, 서로 대화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글도 같은 특징을 가진다. 이런 묘사들은 “여성됨은 선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성경적 시각과 닮아 있다. 구약의 룻과 에스더는 여성이면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마르다의 자매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변의 남자들보다 먼저 예수의 일을 깨달았다. 이 여성들은 결국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상들은 언제나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약속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피조물로서의 선함을 거부한다. 현대 성별 이론도 여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여성을 축소시키고 지워버렸다. 다시금 분명해지는 것은,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여성이 가진 존엄은 하나님이 그들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실 때 주신 영광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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