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경이를 회복하기
- Sang Lee
-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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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경이를 회복하기
2025/12/18 - 존 스톤스트리트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L3ao_AVX_Qw
(2) 번역 스크립트 :
오늘날의 문화 전쟁과 그 상업화에 대한 불만이 본격화되기 수십 년 전, T. S. 엘리엇은 자신의 시 「크리스마스트리를 가꾸며(The Cultivation of Christmas Trees)」에서 크리스마스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묘사했다. 이 시는 대림절에 깊이 묵상할 가치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들이 있다.
사교적인 태도, 무기력한 태도,
노골적으로 상업적인 태도,
(술집은 자정까지 열려 있고) 소란스러운 태도,
유치한 태도—
그러나 이것은 아이의 태도가 아니다.
아이에게 촛불은 별이며,
트리 꼭대기에서 날개를 펼친 금빛 천사는
장식이 아니라, 천사 그 자체다.
아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경이로워한다.
그를 경이의 정신 안에 머물게 하라.
이 축제를 어떤 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하라.
반짝이는 황홀과 놀라움,
처음으로 기억되는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감탄,
새로운 소유물에 대한 기쁨과 놀라움—
각각이 지닌 독특하고 설레는 냄새와 함께—
거위나 칠면조를 기다리는 기대,
그것이 실제 나타날 때
예상되는 경외가,
훗날의 경험 속에서도 잊히지 않게 하라.
지루한 반복과 피로, 권태 속에서도,
죽음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과
실패를 자각하는 때에도,
회심자의 경건함 속에서도—
그 경건함이 자기만족으로 더럽혀져
하나님께는 불쾌하고
아이들에게는 무례해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여기서 나는 또한
성 루치아와 그녀의 노래,
불의 왕관을 감사함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마침내, 여든 번째 크리스마스 이전에
(‘여든 번째’란 마지막이 될 모든 것을 뜻한다)
해마다 쌓여 온 감정의 기억들이
하나의 큰 기쁨으로 응축되게 하라.
그 기쁨은 또한 큰 두려움이 될 것이다.
모든 영혼 위에 두려움이 임했던 그 순간처럼.
이는 시작이 끝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며,
첫 번째 오심이
두 번째 오심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이 시는 그리스도인이 크리스마스를 대할 때 취해야 할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아이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멈춰 서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경이(wonder)’이다. 고전 교육자 데이비드 디너(David Diener)에 따르면, ‘경이’란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고, 단순함 속에서 신비를 알고자 하는 갈망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경이로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감탄하는, 풍요롭고 인간적인 활동이다.
엘리엇은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경이로워한다. 그 경이의 정신 안에서 계속 머물게 하라.” 교육 현장에서나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크리스마스의 진리를 향해 경이로워할 수 있는 아이의 아름다운 능력이 얼마나 자주 무시되거나 짓눌리는가?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놀라운 기적을 어른들은 얼마나 쉽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가? 이 현실은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을 경이로움 속에 머물게 했던 사건이었다.
엘리엇은 또한 또 하나의 아이다움, 곧 기대하며 기다리는 태도를 권한다. 그날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기다림이다. 어른들이 크리스마스 준비의 여러 어려움과 씨름하는 동안, 엘리엇은 “해마다 쌓인 감정의 기억들이 큰 기쁨으로 응축될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물론 C. S. 루이스가 『인간 폐지』의 서문에 인용문으로 언급했듯이, 크리스마스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엘리엇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크리스마스 이야기 속의 ‘두려움’을 상기시킨다. 가브리엘을 만난 마리아의 경험, 천사들 앞에서 떨었던 목자들, 요셉의 삶을 바꾼 꿈,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헤롯의 학살 명령이 그것이다.
땅 위에 참된 평화와 사람들 가운데 선한 뜻을 가져오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리스도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셨고, 크리스마스가 주는 어린아이 같은 경이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한 자세를 제공한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시고, 죄를 이기시며, 만물을 새롭게 회복하고 계신 구주를 신뢰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포함한다.
이러한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유치한 것이 아니다. 철학자 J. P. 모어랜드(J. P. Moreland)는 이렇게 썼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특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려는 겸손함을 뜻한다. 어린아이의 반대는 지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교만하고 완고한 사람이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의 죽음과 부활의 관점에서 보게 하며, 하나님의 펼쳐지는 현실의 이야기 속에서 화목하게 하는 사람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재림과 승리의 통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 엘리엇의 말처럼,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이 그의 두 번째 오심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를 채우기를 바란다. 그날에는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앤드루 카리코(Andrew Carico)와 함께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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