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찾는가, 아니면 향수를 좇는가?
- Sang Lee
- Sep 7
- 2 min read
하나님을 찾는가, 아니면 향수를 좇는가?
2025/5/21 - 존 스톤스트리트/티모시 D. 패짓
1. 영어 오디오 및 원문 스크립트
2. 한국어 오디오 및 번역 스크립트
(1) 한국어 오디오 : https://youtu.be/accsato7zQQ
(2) 번역 스크립트 :
<가톨릭 뉴스 에이전시>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에서는 부활절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작년보다 45% 증가한 수치이며, 역사적으로 회의적이고 세속적인 프랑스 사회를 고려할 때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보도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들려오는 소식과도 일치한다.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그동안 거부되었던 신앙으로의 복귀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역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동방 정교회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는 이러한 현상을 대중적 부흥 운동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부흥”이라 부른다. 영국의 글렌 스크리브너와 저스틴 브라이얼리, 미국의 개빈 오틀런드는 이러한 조용한 성장을 조심스럽게 기록해 왔다. 그들 모두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부흥인지 아니면 과도하게 반복된 ‘워크(woke)’ 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문화의 흐름이 이동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 리처드 도킨스 등과 함께 신무신론이 유행했었다. 동시에 팀 켈러, 존 파이퍼, 복음 연합(The Gospel Coalition)을 통해 새 칼빈주의가 떠오르기도 했었다. 이 서로 다른 운동들은 9/11과 세계적 테러 위협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상을 지적으로 구조했다.
이러한 흐름은 1980년 히피 시대,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나의 시대”라 불렸던 향락적 10년의 여파 속에서 등장한 레이건 혁명과도 비슷하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희망을 찾아 신앙, 가족, 자유로 돌아갔다. 새롭게 등장한 종교 우파는 정치의 한 축이 되었었다. 그 이전에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견뎌낸 위대한 세대가 냉전과 핵 위협 속에서 장군 출신의 아이젠하워를 대통령으로 뽑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 말하는 구원의 은혜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문화적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본능을 가진다. 동시에 새로운 위험한 사상에 쉽게 매혹되기도 한다. 지난 10년의 어리석음을 거부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향수에 빠지는 것도 “진보”를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전략은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진리’다.
확실히, 많은 이들이 남성은 여성 스포츠나 화장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지쳤다. 또한 서구 문명 전반이 악하고 억압적이라는 주장에도 질려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잘못된 생각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진리이고 선한 생각을 붙들고, 그 위에 무언가를 세워야 한다. 이 “분위기 전환”이 지속되려면, 새로운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씨앗 중 일부는 돌밭에 떨어져 잠깐 생명을 보였지만 뿌리가 없어 곧 말라 죽었다. 이 비유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진리를 말해준다. 교회는 신앙의 토양을 깊이 파고들며 갈아엎어야 한다. 이번 변화의 순간이 한순간 반짝하고 끝나는 일이 되지 않으려면, 단순히 잘못된 것을 싸워 없애는 데서 멈추지 말고, 진리이고 선하며 옳은 것을 세워 나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새로운 회심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지금 찾아온 이 기회는 교회가 더 많이 손을 내밀고 더 많은 이들을 맞이해야 함을 보여준다. 최근까지 우리는 깊이보다는 넓이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깊은 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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